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을 앞두고 한일 관계에 이상신호가 켜지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기습 참배를 계기로 수면아래 있던 이상 기류들이 표면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5일 방한한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무성 장관과의 면담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정부도 "분노와 함께 큰 실망감을 느낀다"며 지금까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 나온 성명 가운데 가장 높은 톤으로 비난했다.
뿐만이 아니라 새 정부에 대한 일본 정계의 걱정이 직·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노 당선자를 만나기 위해 방한한 일본 인사들이 노 당선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도 앞으로 한일관계가 삐걱거릴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모리 요시로(森喜郞) 전 일본 총리는 노 당선자와 면담에서 일본 언론 보도를 인용, "노 당선자가 한미일 공조를 중요시하고 있는지 우려된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비록 언론보도 내용을 빌린 것이지만 이 같은 말을 꺼낸 것 자체가 노 당선자에 대한 일본 정계의 시각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자민당 간사장대리)도 노 당선자와의 면담에서 "대북 유화책에 신중을 기하고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노 당선자의 일본 인맥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데 있다. 한일관계가 곤경에 빠졌을 때 풀어나가기가 그만큼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노 당선자측 주변 인사나 인수위의 외교안보분과 위원들 가운데에선 그나마 도쿄(東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동만(徐東晩·상지대교수)위원이 '일본통'으로 꼽힐 정도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김 대통령과는 달리 가와구치 장관을 16일 예정대로 면담키로 했다. 이는 당선자측이 상대적으로 약한 대일관계 인맥을 보완하겠다는 의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또 DJ가 '악역'을 맡아 노 당선자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배려 차원에서 내부 역할 분담이 작용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대선기간 "한일관계에서 과거는 중요하지만 미래는 더 중요하다"며 대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노 당선자가 정대철(鄭大哲) 대미 특사단의 방미에 앞서 특사단을 일본에 파견, 먼저 협의를 진행키로 한 것도 일본측의 걱정을 해소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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