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의 14일 '새로운 협정' 언급에는 미국이 지향하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청사진이 담겨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밝힌 '북한과의 다른 미래'의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으로, 1994년 제네바 합의 체제의 전면 대수술을 의미한다.미국의 목표는 파월 장관이 말한 핵 무기 '생산능력'을 넘어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파월 장관은 "제네바 합의가 북한 핵 물질 생산을 봉쇄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생산능력은 그대로 남겨뒀다"고 밝혀 사실상 북한의 핵 생산 능력 자체를 완벽하게 무력화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제네바 합의의 최대 맹점으로 지적돼온 북한의 '과거 핵' 규명은 물론이고, '2003 핵 위기'의 사실상 시발점인 대북 핵 사찰 시점 문제도 포괄적으로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이 제시한 '새로운 협정'은 제네바 합의 같은 북미 양자 간 협정이 아니라 주요국이 참가하는 다자간 합의가 될 공산이 크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핵 문제가 오로지 미국하고만 대화하자고 주장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북미 양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협정'이 WMD 포기 대가로 북한에 주는 반대급부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적인 대북 체제보장 약속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보상 시스템도 전면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파월 장관은 "원자로일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혀 한국·일본의 경수로 2기 건설, 미국의 중유공급으로 구성된 제네바식 보상 체제의 변경을 강하게 시사했다. 엑손모빌 등 미국의 석유자본이 추진 중인 사할린 가스 지원이나, 미 보수진영 일각에서 제기해온 화력발전소 대체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북 에너지 보상 주체도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13일 언급한 대로 '국제적 차원'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파월 장관의 제안은 물론 미국 내 대북 강경파들과의 타협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제네바 핵 합의에 근거한 대북 중유공급과 경수로 건설 지원을 무위로 돌리려는 강경파들의 구미에 맞는 제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파월 장관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북한도 제네바 합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합의를 염두에 두고 핵 위기를 조성했다는 분석이 많다. 정부 관계자는 "파월 장관의 언급은 북한에 핵 포기 이후의 미래상을 제시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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