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내각제 개헌론으로 술렁이고 있다. 4일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가 처음 화두를 던지고 13일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가세하자 내각제가 신년 정국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는 형국이다. 이들 외에도 내각제 지지의 저변은 여야를 막론하고 상당히 넓어 논란은 갈수록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내각제 호응도는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당 정치개혁특위의 이강두(李康斗) 제1분과 위원장은 14일 "내각제를 당 정강정책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까지 말했다. 특히 연이은 대선 패배 후 권력으로부터의 소외감이 이런 경향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내각제 개헌으로 권력을 장악 또는 분점하겠다는 심산이다.
그 중심 축은 영남권 의원들이다. 영호남 대립구도를 발판으로 원내 1당으로 부상, 권력을 쥐거나 최소한 연정 등을 통해 내각에 참여할 수 있는 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이들을 결집시킨다. 비(非) 영남권 중진인 서청원(徐淸源) 대표와 최병렬(崔秉烈) 신경식(辛卿植) 의원 등도 사견을 전제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개헌의 골격과 관철을 위한 구상도 구체적이다. 이 총무는 이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5년 임기를 보장하는 내각제 개헌론을 피력했다. 그는 "노 당선자가 국가의 상징으로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경제 등 내치를 맡는 형태의 내각제가 바람직하다"며 "이 안이 채택되면 2004년 17대 총선 이전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실시, 총선은 새 헌법 아래서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반면 민주당은 조기 개헌 공론화에 대한 노 당선자측의 부정적 입장 때문에 논의가 아직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내각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등 여러 개헌구상이 산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반노(反盧), 비노(非盧) 성향을 보였던 중진들이 집중적으로 개헌을 입에 담고 있는 사실이 주목된다. '중도개혁포럼'을 이끌며 노 당선자와 거리를 두었던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이날 한 대표의 개헌론에 대해 "이왕에 나온 얘기를 틀어막을 수는 없다"고 동조했다.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도 같은 입장이다. 결국 이들의 노림수는 내각제를 고리로 한나라당 개헌론자들과의 연대 가능성을 암시하며 신주류의 퇴진 압력에 맞서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의가 활발해지더라도 개헌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노 당선자의 거부감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에서조차 소장파의 반발로 당론으로 채택하기 어려운 사정이다. 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 의원은 "개헌 주장은 순수성이 의심돼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7대 총선 이후 내각제 개헌은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개헌과 국회 해산에 따른 17대 의원들의 임기단축이 전제 조건이지만, 의원들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한나라당 이 총무도 "그 문제는 그때 가서 보자"며 말끝을 흐렸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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