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다음 기회에…" "(인수위에) 그런 업무를 보고한 사실이 없습니다."노무현 당선자의 공약과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정부부처나 학계 재계 인사들은 요즘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닫고 있다. 대통령선거 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한달 전만 해도 이들은 의견 개진을 위해 지상(紙上) 유세에 열렬히 나섰다. 오피니언 리더와 국민대중의 소리를 지면에 옮기는 한국일보 여론독자부에도 원고 게재 요청이 쇄도했다. 심지어 원고게재 로비도 들어왔다. 대부분 당선 유력 후보에게 추파를 던지는 듯한 글이었다.
그러나 선거의 막이 내린 후 이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꼬리를 감추고 있다. 원고청탁에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마치 '누구 죽이려는 것이냐'는 식이다. 속사정은 뻔하다. 뒤탈이 날 게 겁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불호령'이 두려운 모양이다.
선거 전후 시기는 여론이 활성해 만개해야 하는 때다. 그런 점에서 여론주도층은 더욱 말을 많이 해야 하고, 어떤 후보와 이념이 맞다고 생각하면 유세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 선거 결과에 따라 완전히 표변하는 '두 얼굴'이 된다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반대한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특히 당선자 진영의 힘을 의식해 무조건 입을 닫는다면 우리 사회의 균형된 여론 조성에 앞장서야 할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기본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당선자측도 선거기간에 내건 공약을 절대선으로 고집하는 독선에 빠져서는 안된다. 실현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공약은 과감하게 궤도수정을 하는 것 역시 '개혁'이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소신있는 입'과 당선자측의 '열린 귀'가 절실한 시기다.
송두영 여론독자부 기자 d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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