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끝섬, 최전방, 가끔 북한 경비정과 교전이 일어나는 곳, 군인들이 많은 곳…. 백령도(인천 옹진군 백령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실제로 백령도는 나라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섬이다. 군사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빤히 북한땅(장산곶)이 보인다. 그래서 만약 전쟁이라도 터지면 죽기를 각오하고 지켜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백령도는 아름다운 풍광과 인정 넘치는 사람들, 때묻지 않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역동적인 섬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식생활이다. 군사요충지와 섬이라는 특수상황은 백령도의 농업을 완벽한 자급자족 체제로 만들었다. 1년 농사를 지으면 백령도 주민들이 3년을 넘게 먹고 산다고 할 정도다. 지천으로 잡히는 수산물까지 가세한다. 백령도 사람들은 한 마디로 '잘먹고' 산다.
그래서 백령도 여행에서는 거의 모든 먹거리를 경험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냉면은 첫 손가락에 꼽힌다. 섬에서 만나는 냉면? 특이하다. 백령도 주민 중에는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이 많다. 한국전쟁때 피난을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했거나, 아니면 고향 가까운 곳에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터전을 닦았다. 자연스럽게 황해도 지역의 냉면이 섬에 자리를 잡았다.
모든 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곳이어서 순수 백령도산 메밀을 쓴다. 면이 투박하고 육수를 부어마시는 형식 등 평안도식 냉면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맛은 조금 다르다. 섬에 자란 메밀의 향기가 육지의 그것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구수한 향기에 달착지근한 느낌이 혀에 감돈다. 역시 백령도에서 키운 돼지고기 수육이 육수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먹는 방식이 독특하다. 그래서 백령도 주민과 함께 먹는 것이 좋다. 면 위에 얹은 삶은 계란을 일단 바깥으로 들어낸다. 겨자와 식초와 설탕을 취향에 맞게 넣고 약 1분 정도 기다렸다가 면을 푼다. 그래야 면발이 부드러워지고 오히려 엉키지 않는다.
마지막 한 국자 정도의 육수가 남았을 때 먹는 것을 멈춘다. 다시 더운 육수를 한 국자 정도 붓고 들어냈던 계란 노른자를 그 육수에 잘 푼다. 결정적인 것은 백령도의 으뜸 특산품인 까나리액젓. 계란 노른자를 푼 육수에 까나리액젓을 타고 잘 저어서 단숨에 마신다. 묘한 맛이다. 분명한 것은 시원하고, 비리다는 것. 섬 냉면은 그렇게 진한 바다냄새로 마무리된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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