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월 입국한 뒤 파출부 일을 하며 불법 체류하던 중국인 L(40·여)씨는 지난해 11월28일 귀국길에 올랐다. L씨는 인천공항 출국심사대에 중국 여권과 베이징(北京)행 항공기 탑승권을 제시, 출국 절차를 마치고 보세구역으로 들어갔지만 그녀가 탑승한 항공기는 베이징행이 아니었다. L씨는 보세구역에서 사전에 브로커를 통해 약속한 30대 남자와 만나 안모(36·여)씨 명의의 위조여권과 가짜 출국심사인이 찍힌 후쿠시마(福島)행 항공권을 받은 뒤 일본으로 출국했다.인천공항에서 '바꿔치기'수법을 이용한 신종 불법 출입국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민등록 전산망조회 시스템이 도입되는 등 출입국 심사가 강화돼 단순 위조여권을 이용한 불법 출입국이 어렵게 되자 일단 자신의 여권으로 출국심사 절차를 마친 뒤 브로커 등으로부터 위조여권과 항공권을 받아 다시 제3국으로 불법 출국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3월 강제 출국 맞물려 더욱 늘 듯
14일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공항 보세구역내에서 위조여권이나 '바꿔치기' 수법으로 불법 출국하거나 항공기를 바꿔 타려다 적발된 승객은 총 204명. 이중 대다수인 150명 가량이 재중동포 등 중국인이다. 출입국사무소측은 "올 3월 말까지 강제 출국해야 하는 14만명의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 일본 등 제3국으로 출국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바꿔치기 수법이 극성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 브로커들이 국내 브로커와 결탁, 고객이 인천공항에서 환승할 때 위조여권과 항공권을 제공, 제3국 출국을 알선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출입국사무소 관계자는 "제3국의 입국 심사과정에서 적발돼 강제 퇴거 당한 중국인들을 조사한 결과 중국 푸젠(福建)성의 폭력조직 '사두(蛇頭)파'는 마약사업에서 손을 떼고 인천공항 등을 경유한 미국 캐나다 일본 등지로의 불법 입국 알선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단속인력은 턱없이 부족
출입국사무소는 물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까지 자체 감시반을 구성, 이 같은 불법 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출국 심사시 본인 여권을 사용,사실상 적발이 불가능한데다 조사인력마저 턱없이 부족해 단속 실적은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이현무(李鉉戊)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은 "인천공항이 제3국 불법 입국의 중간 거점으로 활용되면서 국가 이미지 실추 등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으나 24시간 순찰이 가능한 조사과 직원은 고작 4명에 불과해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상시 순찰과 의심가는 출국자 및 환승객에 대한 정보수집을 위해 조사인원을 20명 이상으로 늘려 출입국관리시설(CIQ) 안팎의 감시를 강화하고 항공사와도 업무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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