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생일 즈음이면 어머니는 아팠다. 이상한 일이었다. 출산의 고통이 해마다 되살아나 기억의 의식을 치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하는 어머니 품에서 자라난 아들은 언젠가 자신도 생성의 신음을 토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택수(33)씨가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창작과비평사 발행)을 펴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5년 만이다. 촉망받는 젊은 시인으로 꼽히는 그의 시집 소식이 좀 늦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평생 시집 두세 권만 낼 생각이었다"며 수줍게 웃는다. 13일 서울에서 만난 그는 막 나온 시집을 들춰 보면서 "지금껏 150여 편을 썼는데 책으로 묶은 것은 60편"이라고 말했다.그만큼 공들여 가려냈다는 뜻이다. 등단작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은 묶지 않았다. "문학청년 시절의 감성이 너무 뜨거워 다른 작품을 녹일까 싶어서"다. 두번째 시집에 등단작을 실을 참이다.
'어느날은 뜬금없이 홍어가 먹고 싶었는데/ 아기가 홍어처럼 납작해지기라도 할까봐 엄두를 내지 못했단다/ 또 어느날은 낙지와 해삼 생각이 간절해서 장터를 돌아다니다가/ 뼈 없는 아기라도 낳을까 저어해서 그냥 돌아왔단다'('닭과 어머니와 나'에서) 아기가 든 몸을 신전처럼 여기고 아기를 위해 대신 아파한 어머니처럼, 그는 시가 세상을 위해 대신 아파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다. 어머니가 몸앓이를 통해 아들이 처음 세상에 나온 순간을 불러내는 것처럼, 시인은 시를 쓰는 아픔을 통해 세상이 처음 시작된 순간을 불러낸다. 식물과 동물과 사람이 모두 한 가족이었던 순간. '배추, 고추, 상추, 푸성귀밭의/ 식물과 곤충이란 것들이/ 예전엔 그렇게 다들 한통속이었다// 그걸 먹고 사는 사람도 순하디순한 소처럼/ 철퍼덕, 철퍼덕, 차진 똥을 누며/ 식물과 곤충과 혈연으로 두루/ 일가를 이루었다'('쇠똥구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놀랍게도, 거슬러 올라가는 시인의 시선은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본다. 앞으로 날아가는 새와 뒤에 남겨진 발자국, 전진과 후진이 시인의 눈에 함께 찬다.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 때 시는 뒤를 향한다. '모래밭 위에 무수한 화살표들,/ 앞으로 걸어간 것 같은데/ 끝없이 뒤쪽을 향하여 있다//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드센 바람 속을/ 뒷걸음질치며 나아가는 힘, 저 힘으로// 새들은 날개를 펴는가/ 제 몸의 시윗줄을 끌어당겨/ 가뜬히 지상으로 떠오르는가'('물새 발자국 따라가다'에서)
네 살 때 대꽃이 피었다. 80년마다 한 번씩 대꽃이 피면 대숲은 스러진다. 생계가 막막했던 가족은 고향인 전남 담양을 떠나야 했다. 부산으로 왔다. 그가 살고 있는 바닷가에도 대숲이 있다. "대나무와 수평선이 십자 성호를 긋고 있다"고 아름다운 언어로 풍경을 옮긴다. 난 곳에도, 자란 곳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못했다. 시인의 무기인 언어를 두고도 그는 '이중의 모국어 의식'에 시달렸다. "두 언어를 함께 살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었다. 시는, 두 언어를 뛰어넘어 말을 말 자체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소통의 방식이었다."
지독하게 앓고 나면 인생의 육중한 무게가 가뿐하게 덜어진다. 아프게 시원을 좇던 시인은 가볍게 시를 날려보내는 법도 깨친다. 이제 그는 시집에 '호랑이 발자국'을 찍어놓고 유쾌하게 웃으면서 풀쩍 넘어갈 수 있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들갑을 떨며 사람들이 몰려가고/ 호랑이 발자국 기사가 점점이 찍힌/ 일간지가 가정마다 배달되고/ 호사가들의 입에 곶감처럼 오르내리면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이 복고풍 유행처럼 번져간다고 치자'('호랑이 발자국'에서)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