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지금 몇 번이나 맞았는지 몰라요. 스무 번까지 세다가 말았어요. 조금 있다 이 장면 촬영 끝나면 정식으로 인터뷰할 게요."SBS 주말드라마 '태양 속으로'의 촬영이 한창인 8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 SBS제작센터. 남자 주인공 석민 역을 맡은 권상우(27)는 스태프 옆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세트장으로 향했다. 여자 주인공 명세빈(혜린)에게 기습 키스를 한 뒤 무릎을 차이는 장면만 벌써 서른 번. 바지 안의 붕대는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그런데도 문정수 PD는 "한번 더" 주문한다. "자, 세빈이, 찬 데 또 차는 거야."
스타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TV에서 2분 가량 방송될 장면을 찍기 위해 권상우는 걷어 채이고 구르기를 5시간 여 동안 반복했다. 절룩거리면서도 PD 앞의 조그만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연기를 확인하는 근성을 보였다. "이 정도는 약과에요. 지난번 진해 촬영에서는 바다에 10번 넘게 뛰어들었어요. 삽교천에서는 투신자살 장면까지 있었죠."
권상우는 속된 말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신세대 남자 연기자다. 해군 대위와 여의사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태양 속으로'와 믿는 건 주먹뿐인 불량 고교생을 다룬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감독 김경형·2월7일 개봉 예정)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광고전문 인터넷 방송국 NGTV가 12월24∼31일 네티즌 86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2003년 광고계 유망주 3위로도 뽑혔다. 영화 데뷔작 '화산고'에서 보여준 송학림의 카리스마, '일단 뛰어'에서 보여준 우섭의 불량기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막판 촬영중인 '동갑내기 과외하기'까지 3편의 영화에 모두 고교생이에요. 해군 대위로 나오는 이번 드라마야말로 제 나이 값을 해보는 첫 작품입니다. 바깥에서는 엄격한 군인이지만 일찍이 부모를 여읜 여동생 수진(김정화)에게는 한 없이 부드러운 오빠, 그러면서 명세빈 앞에서는 돈키호테처럼 변신하는 순정남 역이죠. 아직 드라마 연기가 많이 부족하지만 군인정신으로 밀어 붙이겠습니다."
'군인 정신'은 빈말이 아니다. 12월 초 진해 해군기지에서 함상 신고식을 찍던 날, 촬영장을 지켜보던 실제 해군 50여 명은 하얀 제복을 입은 권상우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183㎝ 72㎏의 단단한 몸매도 그랬지만, 절도 있는 경례 자세가 여느 연기자와는 달랐기 때문. "제가 이래봬도 육군 논산훈련소 조교 출신이거든요. 거수경례야 기본이죠. 앞으로 모든 일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일 겁니다."
권상우의 가장 큰 매력은 지나칠 정도의 솔직함이다. "영화배우 정우성 선배를 좋아하거든요. 데뷔 전부터 존경했습니다. 제가 조금 유명해지고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게 됐죠. 어찌나 기쁘던지, 슬쩍 다가가 한마디 건넸습니다. '사인 해주세요'." 이런 얘기까지 하는 스타는 흔치 않다. "광고 유망주 3위에 꼽혔다"는 말에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왜 광고가 안 들어오는 거죠"라며 속마음을 유쾌하게 드러낸다.
연기 근성도 소문이 나 있다. '화산고' 첫 촬영 날 한창 대사를 읊었는데 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내일 다시 해라." 그날 밤부터 연극배우 한 명을 집에 불러놓고 연기수업을 쌓았다. 다음 날 감독이 또 한숨을 쉬자, 이번에는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될 정도로 같은 동작과 대사를 반복했다. 결국 그의 독기에 질린 감독이 3일만에 OK사인을 냈다. "평소에는 얌전하다가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눈에서 불이 나는 연기자가 바로 권상우"라는 이종한 SBS 드라마 총괄PD의 평가도 이래서 나왔다.
"앞으로는 액션과 섬세한 감성을 결합한 '느와르' 연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비련의 깡패'라고나 할까." 끝으로 연기와 돈에 대해서 물었다. "물론 고향 친구들보다는 많이 번 편이죠. 그러나 연기자 데뷔가 늦은 만큼 또래 스타 연기자와는 비교가 안 돼요. 그래도 고향(대전) 친구들과의 술 자리에서 술값을 계산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합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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