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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냐고? 가학프로 천만에!

입력
200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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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혀라.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지상명령이다. 어디로 채널을 돌려도 주말과 평일의 심야시간대는 온통 연예인을 모욕하고 공격하며 웃음을 이끌어 내는 프로그램들이 점령해 버렸다. 연예인 모욕하기, 겁주기, 골탕 먹이기를 통해 시청자 또는 관객에게 웃음을 사는 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웃음의 요소 가운데 하나가 가학성 또는 공격성임을 전면 부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지금 안방극장의 가학성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1 KBS 2TV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일요일 오후 6시)의 'MC 대격돌' 의 한 코너인 '위험한 초대'. 진행자 강병규 강성범 주영훈 신정환의 앉은 자리엔 '하하 웃는다' '뺨 만진다' '미안해요' 등 단어들이 각각 적혀 있다. 초대 손님(장나라)이 해당 단어를 말하거나 그 말과 관련된 행동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때마다 진행자들이 앉은 자리 위 아래에서 물대포가 물줄기를 쏟아낸다. 몇 차례를 맞고 나면 꼴이 말이 아니다.

#2 SBS '뷰티풀 선데이'에서 '공포의 지우개펀치'(일요일 오후 6시). 강호동 이혁재 이진 슈 등이 나와 초대 손님과 1대 1로 누가 더 기억력이 좋은가를 겨루는 코너. 벌칙으로 양 볼에 책가방만한 분필 지우개가 날아 온다. 상대방이 말한 단어를 기억하지 못할 때마다 몇 번씩이나 분필가루를 듬뿍 묻힌 지우개가 볼을 때린다. 머리, 얼굴, 옷은 삽시간에 분필가루 투성이.

#3 SBS '러브 투나잇'(수요일 밤 11시5분) 중 '러브 오딧세이'. 남자 '폭탄'과 여자 '폭탄' 제거 코너가 가관이다. 남자 연예인과 여자 연예인이 편을 가른 뒤 숙의를 거쳐 상대 진영의 '폭탄'을 뽑아 프로그램에서 퇴장을 시킨다. 여자 출연진은 폭탄을 모면키 위해 남자 출연자에게 엉덩이를 흔들며 섹시한 춤과 노래를 해야만 했다. 자막엔 '섹시함과 거리가 먼 누구' 등의 해당 연예인을 모욕하는 해설이 친절하게 올라 있다. 남자 폭탄은 물통에 빠지고 여자 폭탄은 밀가루를 뒤집어 쓴 뒤, 그것도 모자라 물뿌리개로 물줄기를 맞으며 쫓겨나듯 퇴장한다.

1월7일 KBS 2TV '김용만 박수홍의 특별한 선물'(화요일 밤 11시)은 '포장마차' 코너를 통해 벌칙으로 '고추냉이 5단 샌드위치 먹이기'를 선보였다. 박수홍과 권상우는 물을 들이키며 숨차했다.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공포의 쿵쿵따' 처럼 밀가루 든 풍선을 터뜨려 출연자의 옷과 머리를 망쳐놓거나, 매운 음식을 강제로 먹이면서 이들 오락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을 웃음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왕따 만들기 등 가학의 패턴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은 '시청자와의 공모'를 통한 연예인 괴롭히기 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손병우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웃음은 위장된 공격성에서 나온다. 코미디의 즐거움이란 강자에 대한 공격을 기본 정신으로 갖고 그것을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변형하여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작진은 화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누가 어떻게 공격 당할지 자막 등을 통해 알려준다. 제작진과 시청자가 이렇게 서로 공모해 만드는 '공모성' 웃음은 강력하게 전파된다. 게다가 공격 받는 연예인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시청자의 가학 욕구와 훔쳐보기 욕구를 자극하며 웃음 소리를 배로 높인다. 그러나 손 교수는 "강도 높은 골탕 먹이기와 상황 조작은 공격성 효과를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연예인에게 가하는 고통의 강도를 높이다가 몰락한 몰래 카메라를 예로 들었다.

이들 오락프로그램은 다양한 포맷의 오락 방식을 개발하기보다 연예인을 떼로 불러놓고 벌칙을 가해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 웃음 속에 숨은 원초적 가학성을 자극하려는 얄팍한 생각이다.

제작진은 높은 시청률을 주장하며 프로그램을 옹호하지만 시청자가 이들 오락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반기는 것만은 아니다. "욕하면서 본다"는 게 적합한 말이다. 위험 수위에 이른 가학성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턱에 물대포를 맞고 출연자들이 뒤로 넘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다"는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들을 무조건 가학증 환자들로 보고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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