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좋은 프로그램, 나쁜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 1995년부터 해마다 신문의 방송 담당 기자들이 선정한다. 교양 부문에서 '올해의 나쁜 프로그램' 3위로 꼽힌 프로그램을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MBC '미디어비평'이었기 때문이다.모든 부문을 통틀어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을 딱 하나만 들라면 서슴없이 미디어비평을 들고 싶은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내가 왜 미디어비평을 올해의 가장 좋은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해보겠다.
한국 방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소신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안전 제일주의나 무사 안일주의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방송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용감한 건 오직 시청률 경쟁을 할 때 뿐이다. 무엇이 옳고 바람직한가? 이 질문은 잊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진 인물이 방송사 사장으로 임명되면 방송이 크게 달라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건 큰 오해다. 지난 수십년간 누적되고 고착된 방송사 내부의 냉소주의 문화는 한두 사람의 리더십으로 바꾸기엔 너무도 완강하다. 방송인들 스스로 들고 일어서지 않는 한 한국 방송의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비평은 기적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신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서 신문을 프로그램 홍보매체로 이용해온 방송이 감히 신문을 비평한다? 그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미디어비평은 지금도 방송사 '밖'보다는 '안'에서 반대와 냉소에 더 시달리고 있다.
나는 미디어비평 제작팀이 미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리 들어가며 편하게 지낼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렇게 어렵고 괴로운 길을 스스로 선택한 걸까? 비평만 해왔을 뿐 비평을 받아본 적이 없는 신문 기자들의 반발과 적대감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는 걸까?
결국 나의 우려는 기우(杞憂)가 아님이 밝혀졌다. 미디어비평이 올해의 나쁜 프로그램이라지 않는가. 방송 담당 기자 37명 가운데 17명만이 설문에 응했으며, 모 일간지의 기자 2명만이 미디어비평을 올해의 나쁜 프로그램으로 꼽았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하니 무슨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어이 없는 결과를 그대로 발표한 방송기자단의 과오는 면책될 수 없으리라 믿는다.
미디어비평에 그 어떤 문제가 있다 해도 이 프로그램은 여태까지 신문들이 집중적으로 비판해온 방송의 '시청률 지상주의' 풍토에 도전해 '생각하는 방송'으로 거듭 나자는 취지로 태어난 것임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시청자들의 공정한 심판을 받기 위해서라도 MBC는 미디어비평에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는 동시에 편성을 주시청시간대로 옮기는 결단을 내릴 걸 촉구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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