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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15·끝) 윤도현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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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록](15·끝) 윤도현 밴드

입력
2003.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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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 40년사에서 2002년의 윤도현 밴드처럼 전국민적 인기를 얻은 팀은 없다. 지난해 각종 선호도 조사에서 1위에 뽑혔고, 9월에는 이미자와 함께 남한 대표 가수로 평양공연도 가졌다. 투박하면서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 윤도현(31·보컬)의 이미지는 CF 모델 섭외 1순위였다. 덕분에 록 밴드로서는 10여년 만에 방송사 연말 가요상도 받았다.계기는 월드컵이었다. 윤도현 밴드가 부른 붉은 악마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는 애국가 이상이었고, 거리의 수십만 관중을 호령하는 윤도현 밴드는 월드컵 열기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벼락 스타' 소리도 듣는다. 사실 '오 필승 코리아' 이전에 대중적으로 빅 히트한 곡은 없다.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히트한 노래들은 '너를 보내고' '사랑 2' 등 모두 발라드다. 멤버 중 윤도현 외에는 알려진 인물도 없다.

하지만 월드컵 거리공연을 준비하던 이들은 제일 먼저 윤도현 밴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연했다. 윤도현이 97년 2집을 내며 결성한 윤도현 밴드는 주류로서는 유일하게 록의 불모지인 가요계를 지켜 온 '한국 록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TV가 아닌 라이브 무대를 근거지로.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150∼200회가 넘는 공연을 한 결과 "패기와 순수함 빼고는 아무 것도 없던 촌놈" 윤도현은 물론 다른 멤버들도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 했다. "라이브는 록 밴드의 기본이자 의무"라는 게 윤도현과 현 멤버인 허준(29·기타), 김진원(33·드럼), 박태희(34·베이스)의 공통된 생각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윤도현 밴드는 록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반항적인 음악으로 태어났지만, 억압적인 정치 사회체제에 길들여져 메시지를 소홀히 해온 한국의 록이 비로소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움직이게 했다. 2집 '이 땅에 살기 위하여'와 3집(98)의 선거를 빗댄 '새로운 약속'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노래했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무대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았던 윤도현 밴드에게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노랫말, 메시지에 대한 윤도현의 생각은 93년 가수활동을 시작했던 노래 모임 종이연에서 비롯된다. 그전까지는 그 역시 또래들처럼 헤비 메탈에 빠져 있었다. 고향인 파주가 미군 주둔 지역이라 음반은 '빽판'이지만 없는 것이 없었다. 무작정 나간 통기타 업소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한 포크 가수 김현성을 만났고 그는 윤도현에게 노래는 사회, 현실과 닿아있어야 한다며 '의식화'를 시켰다. 윤도현은 "자연스레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노래가 사회 속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윤도현은 한국 록의 미래를 섣불리 낙관하기 보다 자신들이 하나의 가능성이 되길 바랄 뿐이다. "스타가 좋은 건 더 이상 홀대 받지 않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다는 거죠. 극도의 빈곤 속에서는 악으로 하는 음악 밖에 안 나오니까요." 이제는 다시 제자리를 찾을 생각이다. "음악과 밴드 활동에 지장을 주는 건 무조건 손을 놓을 생각입니다." 월드컵과 윤도현 밴드에게 쏟아졌던 관심이 록과 록 밴드로 이어지길 바라는 이들에게 윤도현 밴드는 가장 믿음직한 희망일 수 밖에 없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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