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믿고 체류를 연장시켜 줄 한국인 오야지(사장)가 세상에 어디있소."자진신고 불법체류외국인의 출국유예기한 연장 신청이 시작된 13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사무소를 찾은 300여명의 재중동포들은 이른 아침부터 현장안내를 나온 직원들에게 자신들의 여권을 들이밀며 격렬히 항의했다. 국내체류기간이 3년 미만으로 유예기한 연장 자격을 갖춘 이들이지만 '고용주의 신청서 없인 체류연장이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지침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한국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 체류연장 신청을 하려던 외국 근로자들이 고용주 허가제에 반발, 연장신청 첫날부터 극도의 혼잡을 빚었다. 이들은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고용주의 허가서를 강요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엉터리 방침"이라고 주장했다. 신청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재중동포들은 '고용인의 허가 대신 한국 친척의 보증도 무방하다'는 직원의 설명에도 코방귀를 뀌었다.
홍보부족으로 극도의 혼란
지난해 외국인들의 자체 신청으로도 체류연장을 허가했던 정부가 '고용주 허가조건부 체류연장' 방침을 앞세운 것은 지난해 연장 신청한 대다수 외국인이 허위 신고자들이라는 분석 때문. 지난해 명목상 '고용주 허가제'를 내세웠던 정부는 시행 1주일 만에 외국인 개별신청을 전면 허가했다. 그러나 바뀐 원칙을 모르는 재중동포들은 "고용주의 신청서가 필요하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라며 일제히 정부의 홍보태만을 비난했다. 한국에 온지 1년도 안됐다는 이모(38·여)씨는 "일용직 근로자가 대부분인데 난데없이 보증인을 데려오라는 것은 연장신청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까지 출입국사무소를 찾은 1,000여명의 외국인 중 고용주의 도움으로 체류연장신청을 마친 근로자는 불과 90여명. "현실을 전혀 모르는 한국정부가 해외동포들을 데리고 논다"며 분노한 근로자들은 "괜히 하루 일당만 날렸다"고 허탈해했다.
직원들도 곤욕
된서리를 맞기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도 마찬가지. 지난해 3월부터 2달간 하루평균 7,000명 가량의 체류연장 신청서류를 접수하느라 밤샘근무 등 곤욕을 치렀던 출입국사무소 직원들도 "또다시 악몽이 시작됐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심사과의 한 직원은"신청이 끝나는 다음달 22일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해마다 이런 푸닥거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외국인 노동자 수급과 관련한 정부의 중장기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오후 1시께 고용주 허가제에 불만을 품은 외국 근로자들이 '자진신고 거부'의 즉석 현장시위와 함께 청사 진입을 시도하자 사무소측은 경찰력을 동원, 이들을 외곽 정문 밖으로 몰아내는 비상조치를 취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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