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실 벽에 붙어있는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어색한 느낌이 든다. 그 힘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았는데, 당선자가 자신을 뽑아 준 국민에게 당신이 대통령이라니, 좀 우습지 않은가.그 말은 물론 당선의 영광을 국민에게 돌린다는 인사이고, 국민 모두가 대통령이라는 마음으로 국정에 적극 참여하자는 뜻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국민은 대통령 이상의 존재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고 감시하고 성원하고 책임을 묻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의 인사권자다.
좋은 뜻으로 내건 인사에 시비를 거는 것은 인수위가 선거운동 기간중의 정서를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이제 6주 후면 대통령으로 일해야 한다. 북핵문제 등 벅찬 과제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선거 광고에서 보여준 눈물 흘리는 노무현, 리어카를 끄는 노무현, 기타를 치는 노무현 대신 어려운 국내외 현실에 대처해 나가는 믿음직한 대통령을 국민은 보고 싶어한다. 어떤 멋진 슬로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겸허하게 최선을 다하는 당선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출범을 앞둔 정권은 강력한 이미지로 국민을 통합하고 단기간에 인기를 높이겠다는 욕심을 갖는다. 역대 대통령직 인수위는 대선승리의 흥분과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의가 겹쳐서 과욕을 빚고 설익은 정책들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수립 후 모든 정권을 뛰어넘어 자신이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 정부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인수위는 과거의 인수위들과 달라야 한다.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낡은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는 국민의 욕구 때문이었다. 정치판에 대한 절망과 혐오가 마침내 폭발점에 이르러 투표에 열의가 없던 젊은 세대까지 투표장으로 뛰쳐나갔던 것이다. 대선 결과에 대해 세대간 지역간 대결을 강조하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기성정치에 대한 폭발직전의 혐오감이었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는 낡은 정치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인수위가 흥분과 과욕으로 설익은 정책을 남발하며 자기과시를 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정치의 전형이다. 과욕은 자신들이 남과 다르다는 자만심에서 나온다. 과거 정부의 실패를 매도하는 것은 쉽지만 실패의 원인을 찾아 교훈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과거 정부들도 출범 초기에는 모두 순수한 열정과 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 취임식을 국민축제로 치르겠다는 것도 과욕이다. 인수위는 "21세기 첫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치유함으로써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겠다는 노 당선자의 철학이 반영되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식은 국회 본관 앞에서 간소하게 치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국회 앞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던 곳이고 민의의 전당 앞에서 취임식을 치른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그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고 취임식을 치르는 것 자체가 축제이지 특별한 잔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취임식은 간소할수록 빛날 것이다.
인수위는 좀 더 조용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불과 6주 후면 정권을 넘겨받는데 지금부터 힘을 과시하거나 현 정부 부처들과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다. 정권을 잡은 후 어떻게 내실을 다져나가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선거운동은 끝났다. 그럴듯한 슬로건, 요란한 축제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문민정부'도 겪고 '국민의 정부'도 겪었다. 이제 그냥 정부면 된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말도 필요없다. 허례허식과 수사를 떨쳐버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용과 실천이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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