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미사일 시험 유예 철회 시사 등 잇따른 강공 조치를 취하고 나서 핵문제 해결의 '주도적 역할'을 자임한 정부의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대화 분위기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되레 '초강수'의 카드를 사용, 양측에서 한발씩 양보를 받아내려던 정부의 해법이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을 설득할 명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북한이 위기 수위를 높이는 카드를 내놓을 때마다 직접 또는 중국 러시아를 통한 대북 설득 노력을 기울였으나 번번이 거부당한 상황도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특별이사회를 열어 유엔 안보리에 상정할 경우 북핵 문제는 국제문제화하면서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NPT탈퇴 선언이 심각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북한과의 대화에 유연성을 보이기 시작한 미국의 입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여전히 외교적 해결 노력이 유효하고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강경 압박 조치를 시사했던 분위기와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정부는 6∼7일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와 임성준(任晟準)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방미 등을 통해 나타난 미국의 입장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외교적 노력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입장이다. 12일 방한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도 대화 노력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NPT 탈퇴를 엄중한 사태로 받아들이지만 냉정하게 외교적 해결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사태가 악화하는 가운데 북미 대화 조짐 등 해결의 실마리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내면적으로 외교적 해결 노력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인 셈이다.
정부가 주목하는 점은 북한이 10일 NPT탈퇴 성명에서 불가침조약을 주장하지 않았고 북미간에 핵 문제를 별도 검증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를 철회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이를 언급하지 않은 점과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 차석대사가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의 회담에서 '핵 무기를 만들 의사가 없으며 북미간 별도의 핵 검증을 할 수 있다'고 다시 강조한 것 등에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주도적 역할'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를 논의하는 급박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북미간 대화의 접점이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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