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노무현 당선자가 공약한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문제를 국정의제로 채택함에 따라 새 행정수도 후보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새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기획단을 구성키로 하는 등 행정수도 이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새 행정수도의 인구 규모를 50만∼100만명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구 40만명 규모의 분당신도시가 600만평인 점을 감안하면 새 행정수도의 규모가 1,000만평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수도 후보지에서도 개발에 대한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외지인의 부동산 사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행정 수도의 입지 후보지와 해당 지역 분위기, 행정수도 이전 전망을 알아본다.
"수도가 오기는 오는 거유? 괜히 외지인들이 몰려들어 땅값만 들썩이게 하고 인심만 술렁이게 하는거 아닌 감유?" 8일 찾아간 충남 공주시 장기면의 주민 한상록(64)씨는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 중 하나로 거론되는 이곳의 분위기를 묻자 불안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내뱉었다.
대선이 끝난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충청권 행정수도 후보지에는 대선 직후부터 시작된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땅값 들썩임도 계속되고 있었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시세를 묻는 문의전화도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땅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로 땅주인들이 매물을 거둬 들이면서 실제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충북 청원군 오송·오창지역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30여분을 달려 오창 I·C로 빠지면 곧바로 오송·오창 지역이 펼쳐진다. 이곳은 행정수도 후보지 3곳 중 술렁임이 가장 심하다. 청원군 강외면 일대에 바이오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는데다 고속철도 오송역이 계획되고, 청주국제공항과 중부고속도로가 5∼10분 거리에 있는 입지의 장점으로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스스로 가장 유력한 후보지라고 자신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강외면 오송리 일대는 부쩍 늘어난 외지인의 발걸음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다모아공인중개사 박찬희 대표는 "유력한 후보지로 입소문이 떠돌면서 대선 이후부터 하루 10여팀이 찾고 있다"며 "어제도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아파트 판 돈으로 투자하고 싶으니 가격은 따지지 말고 좋은 물건 있으면 연락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때문에 땅값은 대선 이후 상당폭 올랐다. 농림지는 10만∼12만원, 준농림지는 15만원대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대선직전보다 10∼20%가 오른 것이다. 그러나 땅 주인들이 매물을 거둬 들여 거래는 뜸했다. 신오송공인 김한영 대표는 "한달 전만 해도 20여건 이상 매물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1∼2건도 채 없다"라고 말했다.
충남 아산 신도시지역 후보지 중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아산 신도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10여분 정도면 도착한다. 천안에서 서쪽으로 10여분쯤 차를 달리면 21번 국도 옆으로 '아산 신도시개발 예정지'라는 입간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간판 뒷편으로는 논밭 한가운데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고속철도 천안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아산시 배방·탕정면과 천안시 불당동 일대에 조성되는 아산 신도시 지역은 이미 신도시 개발 재료로 한차례 바람이 불었던 곳이지만 후보지로 거론되며 '플러스 알파' 효과가 생겨나고 있다. 아산제일부동산 엄시룡 대표는 "땅값 변동은 크게 없지만 대선 이후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다시 늘었다"고 말했다.
시세는 전답의 경우 평당 40만∼45만원으로 1년전과 비교하면 10만∼15만원이 상승했고, 대선 이후에는 후보지 효과로 1만∼2만원 또 오른 정도다. 배방면 부동산뉴스공인중개사 강은석씨는 "이곳은 행정수도 이전과 크게 상관없이 땅값 강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다만 수도이전 논의가 본격화하면 또 한차례 시세가 요동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 윤기원(50)씨는 "여기는 물도 부족하고 오기가 어렵지 않겠냐"면서 "행정수도고 뭐고 신도시 개발이나 빨리 잘됐으면 한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충남 공주시 장기지역 서울에서 경부와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이용해 2시간 거리인 충남 공주시 장기면. 이곳은 인근 연기군 금남·남면 일대와 함께 25년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 곳이다. 장기부동산 유장환 소장은 "사람들이 찾아와 행정수도가 들어서면 어디에 위치하게 되느냐면서 땅값을 묻지만 실제 매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10여년 이상 꿈쩍 않던 부동산 시세는 꿈틀대고 있다. 매매가는 평당 임야 3만∼4만원대, 전답 5만∼6만원대로 종전과 큰 변동이 없지만 호가는 치솟고 있었다. 임야의 경우엔 8만∼10만원대, 전답은 10만∼15만원까지 부르고 있다. 평생 농사만 지었다는 토박이 주민 이순기(65)씨는 "땅 값이 오른다 한들 땅만 파먹고 산 농사꾼이 땅 팔고 뭐하고 살겠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청원·아산·공주=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10대 국정 아젠다 중 하나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 발전'이다. 물론 그 핵심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주요 공약인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이다. 하지만 인수위측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인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노 당선자는 구랍 31일 "인수위 후반기에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 문제를 검토하고,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적지(適地)를 어디로 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병준 정무분과위 간사는 최근 "인수위에서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개략적으로만 검토할 계획"이라며 "이전 후보지역 선정을 비롯한 구체적인 사안은 인수위에서 다루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행정 수도 이전은 올 연말∼내년초 입지 선정 완료 2004∼2005년 토지 매입과 보상 실시 새 정부 임기 이전인 2007년까지 부지 조성과 인프라 구축 및 청사 착공 매듭 2012년까지 행정 수도 이전 완료 등 당선자 공약상 일정보다 다소 늦춰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관건은 행정 수도 이전과 관련한 국민 투표 여부. 인수위 관계자는 "연말쯤 국민 토론에 부칠 계획은 하고 있지만 이미 이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은 이뤄진 만큼 이전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반대할 경우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오송·장기 교통편리 VS 비용저렴 논산·아산
새 행정수도의 적지는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전대상 기관 등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지를 짚어내기란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다만 새 행정수도는 서울에서 멀지 않고, 청주국제공항과 고속철도에 인접해 있으며, 고속도로를 통해 전국에서의 접근이 쉬운 지역이 유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은 충북 청원군 오송·오창과학단지. 오송생명과학단지는 당초 300만∼400만평 규모로 개발하려 했다가 수요가 없어 140만평 규모로 축소됐다.
경부고속철도 오송역이 들어서고 오송 역세권에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또한 청주국제공항과 가깝고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요충지이기도 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국립보건원 등 공공기관과 충북대 의대가 입주할 예정이다.
계룡신도시와 3군 사령부가 자리잡은 논산지구도 유력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30년전 박정희 대통령시절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중 최고 적지로 검토된 적이 있는데다 3군사령부 주변의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는 토지를 활용하면 행정수도를 건설하고도 남는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이들 지역 땅들이 대부분 국공유지이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어서 토지취득이 쉽고 건설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장기지구도 유력후보지로 거론된다.
이곳을 행정수도로 개발할 경우 대전, 청주와 삼각축을 이룰 수 있어 기존 인프라 이용과 도시개발이 유리하다. 20∼30㎞ 인근에 있는 공주시 천안시 조치원 등을 위성도시로 개발할 수 있고, 천안-논산간 고속도로가 개통돼 경부고속철도 천안역사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2003년말 개통될 고속철도 등 기반시설을 이유로 아산신도시를 후보지로 꼽는 사람들이 있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경부고속철도 천안역사 주변의 아산신도시는 2020년까지 총 876만평 규모로 개발될 예정이다.
이미 기반시설설치 등 개발계획이 세워져 있고 토지거래계약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투기를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 이전비용을 줄일 수 있고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수도권 분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수도권 외형만 확장한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김혁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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