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CEO 리포트 /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CEO 리포트 /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

입력
2003.01.13 00:00
0 0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슬라이드 휴대폰. 숫자판을 아래로 밀어내리면 좁았던 컬러화면이 확 넓어진다. 국내 모 대기업의 제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컴퓨터수치제어장치(CNC)를 만드는 터보테크가 만들어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공급하는 제품이다. "어쩌다 만난 사람한테 휴대폰을 보여주며 '이거 우리회사 제품이다'고 하면 거짓말인줄 알아요. 쇠 깎는 선반 부품 만드는 회사가 이런 것도 만들었다니, 놀랄 만도 하죠."터보테크 장흥순 사장(張興淳·42·사진)은 사람들의 놀라는 표정이 오히려 즐겁다. 터보테크가 휴대폰 분야로 진출하면서 내놓은 이 제품이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벤처 특유의 끝없는 변신이 고객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이 휴대폰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며 "10년 넘게 CNC사업에서 축적된 정밀제어기술과 컴퓨터 기술이 그대로 응용된 제품"이라고 말한다.

터보테크는 198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 박사과정이던 장 사장과 5명의 학우(學友)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한국 1세대 벤처기업이다. 당시 산학협동 프로젝트등을 수행하다 일제 일색인 산업용 기계 및 부품 시장을 보고 '제대로 된 국산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일념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당시엔 정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아직도 일본 없이는 아무것도 못 만드나' 싶은 생각에 밥도 잘 안 넘어가더군요"

사업아이디어는 기계공학 박사과정의 한 동료가 냈다. 정밀 기계·컴퓨터 부품을 만들고 조립하는데 필수적인 CNC 컨트롤러를 국산화하자는 것. 당시 일본 '화낙'사가 국내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한 제품이었다. 한 선배가 사업밑천으로 5,0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일과가 끝난 저녁시간을 이용, 동료들과 '몰래 집회'를 가져가며 사업 계획을 세웠다. 창업의 산실은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있던 서울 홍릉 근처 물고기 어항 가게 2층에 4.5평짜리 단칸 사무실로 정했다. 기술과 열의 외에는 아무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처음 3년까지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상아탑에 갇혀 세상물정 모르던 사람이 회사를 차리고 물건과 기술을 팔겠다고 나섰으니, 맨땅에 머리 부딪치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그를 믿고 따라주는 사람들에게 월급도 못 주는 '못난 사장'이란 자책감이었다. "같이 일하던 KAIST 최연소 박사 출신의 후배가 어느날 술을 한잔 하자고 하더군요. 안주도 없이 소주만 들이키다 '내가 어쩌다 형을 만나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며 울더군요. 우리는 함께 펑펑 울었습니다."

누구나 '무모하다'며 고개를 가로젓던 사업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89년 상공부 주최 신제품 발표회에서 수십억원대의 수출대체 효과가 있다는 호평을 받으면서부터. 여기저기서 '사업자금을 대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홍릉에서 청계천의 24평짜리 사무실로, 또 원효로의 100평짜리 사무실로 옮겼다. "쪽방에 살다 아파트로 이사가는 기분이었죠." 이후 14년간 연평균 80%의 성장을 구가하며 5,000만원으로 시작한 자본금이 400배가 넘는 222억원으로 늘었고 매출도 8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급성장했다.

회사의 성공만큼이나 많은 영예도 따랐다. 98년에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차세대지도자(GLT)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됐고, 2000, 2001년 연속으로 각종 경영자 대상을 받았다. 지난해말에는 과학기술부가 선정하는 '올해의 테크노 CEO상'도 수상했다.

벌써 4년째 한국벤처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미래에 대해 거침없는 낙관론을 펼치면서도 조바심도 내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 개척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은 벤처기업만의 능력이며 장점"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상황과 소비자의 요구에 한발 앞서 대응하지 못하면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는 것. 터보테크가 CNC분야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휴대폰과 정보통신분야에 진출한 것도 이같은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라는 것이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부터 노화가 시작되는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장 사장이 제시한 '벤처기업의 성장동력'이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사진=최흥수기자

장흥순 사장은 누구

■ 1960년 충북 괴산

■ 1978년 충북고등학교 졸업

■ 1982년 서강대 전자공학과 졸업

■ 1989년 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과 박사

■ 1988년 터보테크 설립, 대표이사

■ 1998년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

■ 1998년 세계경제포럼(WEF)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 100인

■ 2000년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

■ 2002년 과학기술부 '올해의 테크노 CEO' 선정

■터보테크는

88년 장흥순 사장과 KAIST 출신 박사 5명이 정밀 기계 산업의 핵심 장비인 컴퓨터 수치제어(CNC) 선반의 핵심 부품인 CNC컨트롤러를 국산화하기 위해 창업했다. 97년에는 CNC 컨트롤러에 PC의 장점을 접목시킨 PC-NC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산 범용장비를 이용한 공장자동화(FA)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95년 매출 102억원을 시작으로 96년 191억원, 99년 409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리는 등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에는 8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주력 수종(樹種)사업인 CNC 및 금형 컴퓨터설계 및 생산(CAD/CAM) 소프트웨어의 기술을 활용해 휴대폰과 정보통신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산업전자 부문을 담당해온 아산과 청양 공장의 인쇄회로기판 조립시설(SMD) 4개 라인이 CDMA 휴대폰을 생산하고 있으며, 월 최대 15만대 생산이 가능하다. 올해 하반기 시작되는 제3세대 이동통신(IMT-2000) 전용 단말기도 개발중이다.

터보테크는 최근 IT부문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 회사인 (주)넥스트인스트루먼트와 협력 및 투자관계를 맺고 약 18%의 지분을 참여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