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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국토기행](14)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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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국토기행](14)양평

입력
2003.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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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을 지나자 남한강은 설강(雪江)이었다. 6번 국도를 따라 거슬러 올라갈수록 강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양수리 물가를 뒤덮은 연밭은 얼어버린 강물 속에 잠기고 간혹 철새떼가 강 위의 순백으로 내려 쌓인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용담대교를 지나 강 건너 강상, 강하면의 산과 들과 카페촌에 눈길을 주며 달리다 보면 양평읍 못미쳐 6번 국도는 강을 두고 경기 내륙의 오지로 들어선다. 양평군(楊平郡)이다. 미사리를 거쳐 팔당대교를 건너 6번 국도를 자동차로 달리든,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통일호 열차를 타고 가든, 양평은 서울에서 1시간이면 도착한다. 양평은 '물의 고장'이다. 강원도 삼척 땅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금강산 부근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양평에서 한 줄기로 만나 한강을 이루고 서울을 거쳐 서해로 흘러 든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선인들은 '두물머리'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양수리(兩水里)라는 볼품없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이 아름다운 물의 고장은 이제 생태·환경, 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나고 있다. 양평군의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1.45배에 달한다. 하지만 그 광활한 땅에 보금자리를 틀고 사는 사람들은 8만 3,000명에 불과하다. 그들이 보전하고 관리하는 물은 2,200만 수도권 주민의 식수가 된다. 서울에서 가깝고, 물 좋고 산 좋은 이곳에 10여년 전부터 예술인들이 터를 닦기 시작했다. 양평에 작업실을 마련하거나 아예 거처를 옮겨 사는 화가 조각가 시인 소설가 연예인들이 줄잡아 800여 명. 양평 인구 100명에 1명이 문화예술인인 셈이다.

"양평군은 자연환경 보전을 위한 노력을 'Eco―Doctor's Town'이라는 개념으로 집약하고 있습니다." 박신선(42) 군 홍보기획팀장은 묘한 영어 표현으로 양평의 미래를 설명했다. '생태박사마을' 혹은 '생태건강마을' 쯤 될까. 그렇잖아도 여름 휴가철에 강원도로 떠나거나, 요즘 같으면 스키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양평. 군은 주5일 근무시대에 맞춰 양평 전역을 생태공원화해 수도권 주민의 체류·체험형 관광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수도권 상수원 보호와 맞물려 있기는 하지만 양평은 또 친환경 농업의 고장이기도 하다. 여기는 이른바 '굴뚝산업'이 단 하나도 없다. 80여 업체 대부분이 김치나 된장 등 무공해 먹거리를 만드는 기업이다.

"수질 보호와 국민의 먹거리 문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 양평은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고 있다"고 사단법인 '환경농업21' 권오균(75) 위원장은 말했다. 전체 9,945호의 농가 가운데 절반 가까운 4,700여 농가가 제초제나 농약, 화학비료를 일절 안 쓰는 '3가지 안 하기'와 메뚜기·반딧불이 서식지 및 허수아비 들판을 만들자는 '3가지 하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보면 양평은 그야말로 유토피아 같은 땅이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땅이라면 사람들이 몰려들 법 한데도 양평 인구는 크게 늘지 않는다. 환경을 지키기 위한 각종 규제 때문이다. "2,200만 수도권 주민을 위한 좋은 물과 땅을 만든다고 막상 8만3,000 양평 사람은 죽을 지경"이라고 옥천면 아신리에서 만난 주민 황만섭(57)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법은 공평해야 하는 것 아니요? 내 땅 내 맘대로 사고 팔거나 집도 못 짓고, 정화시설 만드느라 돈은 돈대로 들고…. 수도권 사람들한테 걷는 몇 푼 안 되는 물이용 부담금 가지고 양평 사람들 불만이 해소됩니까. 인근 여주는 벌써 시로 승격했고, 이천도 날로 발전하는데 이들보다 먼저 읍으로 승격했던 양평만 제자리걸음, 아니 뒷걸음질치고 있잖아요."

양평을 묶고 있는 규제는 거미줄 같다. 상수원 관리지역으로서의 특성상 수도법, 환경정책기본법, 한강수계법, 산림법의 규제를 받는다. 또 인구집중유발 억제지역으로 수도권정비계획법, 도시계획법, 국토이용관리법, 군사시설보호법, 건축법에 의해 주택 신·증축이 제한된다. "양평에 와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혀를 내두르고 간다"고 황씨는 말했다.

1994년 양평으로 이주한 소설가 김강윤(45)씨는 "그동안 지켜본 양평 주민의 정서는 '가장 가까이 하던 자연이 오히려 원수가 됐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한반도 어느 곳보다 친환경 고장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반환경적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97, 98년 팔당호 오염 문제가 대두된 후 수도권 주민에게 물이용 부담금이 면죄부처럼 부과됐습니다. 하지만 4인 가족 기준 월 200∼300원에 불과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체 정화조 등 하수시설을 만들려면 30평 규모에 500만원이 들어요. 각종 재산권 행사에 대한 규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양평 사람을 두둔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은 수도권 주민을 위해 양평 사람들이 희생하는 꼴입니다." 김씨는 90년대 들어 양평으로 러시를 이루듯 찾아온 문화예술인들이 이런 현실에 눈을 떠 환경운동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98년 '맑은물 사랑 예술제' 개최를 계기로 99년 사단법인 '맑은물 사랑 실천협의회'를 결성, 문인들은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고 미술인들은 매년 '환경미술―물'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양평으로 집을 옮긴 미술인들은 하동철 민정기 박동인 홍용선 정원철씨 등 430여 명, 문인들은 한수산 이윤기 윤후명 오규원 황명걸 백시종씨 등 100여 명 가까이 된다.

양평은 규제 때문에 떠나가는 땅이 아닌, 사람들이 다시 모여드는 땅을 만들기 위해 2020년까지 '인구 15만의 전원 자족도시'로 발전시킨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지금 주민 삶을 옥죄고 있는 물을 원수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건강한 자연의 힘을 그대로 양평의 힘으로 되살려보자는 것이다.

소설가 한수산씨가 양평 작업실에 붙인 이름은 '영하당(迎河堂)'이다. '물을 맞이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두물머리에서 용문산까지, 양평은 이 이름처럼 맑은 물안개가 새벽마다 남한강에서 피어 오르는 고장이자 산간계곡 마을마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한국의 허파와 같은 땅으로 남아야 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사진=류효진기자

● 어부 김동근씨

"아, 남한강에 없는 고기가 어딨어. 한국에 사는 내수면 고기 127종이 거예 다 있지."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주민 김동근(金東根·65)씨는 열여덟살 때부터 남한강에서 고기를 잡고 살아 온 어부다. 얼어붙은 강가, 얼음장에 갇혀 버린 고기잡이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김씨는 양평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하자 "옘병할 양평"이라며 우선 불만부터 쏟아냈다. "규제 때문에 뭘 할 수가 있어야지. 어업 허가는 줘 놓고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저 물가 풀 보이지, 물 관리 한다고 저 풀도 소 못 먹이게 해. 배신감 들고, 이 강물 먹는 사람한테 욕만 하는 거야. 양평 사람들이야 순박해서 어디 제대로 데모나 한번 해?"

남양주군 와부면에서 태어난 김씨는 팔당댐이 생긴 이후 양평으로 와 고기를 잡으며 살아왔다. 그를 만난 아신리 앞 깊어 보이는 강가는 댐이 생기기 전까지는 결고운 강모래가 깔린 백사장이었다고 했다. 상수원 관리로 수질은 좋아져 사라졌던 많은 어종이 돌아왔지만 그때만 해도 물보다 고기가 더 많았다.

"우리는 이 물 그냥 떠서 밥 해먹어." 남한강은 김씨 같은 이들에게는 곧 대대손손 이어갈 텃밭이다. 팔당댐이 생긴 이후 논밭이 잠기면서 농민에서 어민으로 전신한 사람들이 많다. 현재 양평군의 어민은 120명. 팔당댐 건설 전부터 물질을 해온 사람은 50여 명이다. 김씨의 2남 1녀 중 둘째 아들도 아버지를 이어 남한강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됐다.

"요즘 주 소득원은 다슬기야. 좋은 값에 팔리잖아. 하지만 다슬기를 잡으려면 어구를 강바닥에 끌고 다니니까, 사실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지. 수초 파괴되고 고기들 산란 못하고." 남한강 어민들은 다슬기 외에 쏘가리, 빠가사리, 메기를 주어종으로 분류하고 붕어, 잉어 등은 잡어로 치부한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죄다 수동식으로 노를 젓는 목선을 탔지. 지금은 전부 모터보트 동력선이야." 50여 년 강바람을 타고 억세게 살아온 김씨의 얼굴과 손등은 우리네 삶의 그물망처럼 검게 그을리고 주름져 있었다.

/하종오기자

■양평군 현황

위치 동 강원 원주시·횡성군, 서 경기 남양주시·광주시, 남 경기 여주군, 북 경기 가평군 ·강원 홍천군

면적 878.21㎢(임야 74.7%, 전답 16.5%, 기타 9.8%)

인구 3만 376가구(농가 30.6%) 8만 2,991명

행정구역 1읍(양평) 11면(강상 강하 양서 옥천 서종 단월 청운 양동 지제 용문 개군)

예산 2,770억 4,300만원

문화재 용문사 은행나무·정지국사 부도, 사나사 원증국사 석탑, 이항로 생가 등

관광자원 용문산, 중원계곡, 두물머리, 중미산 휴양림, 반딧불이마을 등

<2002년 12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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