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팬을 거느린 중진배우 박정자의 연극 '19 그리고 80'(콜린 히긴스 작, 장두이 연출·사진)이 9일 대학로의 소극장 정미소에서 막을 올렸다. 열 번도 넘게 자살 소동을 벌인 19세의 우울한 청년 해럴드가 유쾌하고 지혜로운 80세 노파 모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인생의 가치에 눈뜨는 줄거리다. 별난 두 주인공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랑은 삶은 아름답다고 수긍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이 연극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쉬운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만 흘러 원작에 감춰진 날카롭고 뜨거운 에너지를 잃어버린 점이다. 두 주인공의 첫 키스나 모드의 죽음처럼 도드라져야 할 대목조차 밋밋하게 뭉개져 버렸다.
박정자의 모드 연기는 관록에 걸맞은 안정감과 자연스러움을 과시했지만 상대역 이종혁은 배역에 깊이 빠져들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보여 불균형을 이뤘다. 해럴드의 엄마나 해럴드의 신부감으로 등장하는 세 아가씨, 정신과 의사, 신부로 나오는 배우들도 더러 필요 이상의 과장된 연기로 사실감을 떨어뜨렸다.
비좁은 무대에 세운 울타리와 나무는 별로 효과적 쓰임새도 없이 초라하고 옹색해 보였다. 굳이 사실적 세트를 만들 것 없이 추상적 무대를 꾸미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텅 빈 공간이 하늘도 되고, 바다도 되고, 방 안이 됐다가 벌판도 될 수 있는 게 무대의 마술 아닌가. 어설픈 오브제로 관객의 눈을 붙잡아 마음대로 상상할 기회를 빼앗기보다는 아무 것도 없는 무대를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것을 꿈꾸게 만드는 게 훨씬 풍요로울 수도 있다. 공연은 3월16일까지 계속된다. (02)3672―3001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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