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은 북한과의 대화에 유연한 자세를 보이기 시작한 미국 정부에게도 충격을 주고 있다.미국은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에서의 대북 대화 용의 표명과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의 북한 체제 보장 시사 발언으로 북한이 미국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터준 만큼 이제는 북한이 화답할 차례라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북한이 당장 우라늄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플루토늄 핵 시설 동결 해제 조치를 원상회복할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상징적 수준의 호응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북한의 NPT 탈퇴는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미 정부 내에 분노와 실망, 당혹과 강경 다짐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탈퇴 선언을 읽는 미국의 코드가 다 같은 것만은 아니다. 대북 강경파들은 선언문 속에서 한계를 알 수 없는 협박의 단어들을 끄집어 낸다. 그런 선택은 북한의 협박이나 위협에 응해 협상에 나설 수 없다는 강경론을 더 단단하게 하는 쪽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강경파들이 유보했던 북한 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 카드를 재론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대북 온건론자들은 북한의 교묘하게 포장된 대화 메시지에 보다 더 주목하고 있다. 비록 NPT 탈퇴라는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북한의 선언이 극단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핵 동결 해제가 전력 생산 목적에 국한하며 핵무기 개발은 없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북한이 NPT 탈퇴 발표를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대사의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면담 일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리처드슨 주지사가 빌 클린턴 정부시절 주 유엔 대사와 에너지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임을 감안하면 한 차석대사는 이번 만남을 통해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부각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워싱턴의 외교 분석가는 "리처드슨 주지사가 조지 W 부시 정부와 관계가 껄끄러운 클린턴 정부의 관료를 지낸 데다 한 차석대사의 면담 요청이 TCOG 회의 훨씬 이전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부시 정부에 대한 대화 창구로서 리처드슨 주지사를 택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최근의 핵 사태가 미국의 중유 공급 중단으로 인해 불거졌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리처드슨 지사와의 접촉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도 보여주는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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