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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바둑기사부부 장주주·루이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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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바둑기사부부 장주주·루이나이웨이

입력
2003.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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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8일 바둑계에 '사건'이 벌어졌다. 제4회 맥심배 입신연승최강전 결승에서 장주주(江鑄久·41) 9단과 루이나이웨이(芮乃偉·40) 9단이 맞붙었다. 두 사람이 부부이고, 조국 중국을 떠나 우리나라에서 활동해 온 프로기사라는 점에서 관심과 흥미를 끌었다. 이날 부부 대결에서 남편 장주주가 불계승을 거뒀다. 인생의 동반자로서 즐겁고 슬픈 일을 함께해 왔지만 이날만은 승자와 패자로 갈릴 수밖에 없었다. 장주주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이기면 정말 기쁩니다. 지면 무척 기분이 상하고요. 그런데 그날만큼은 이긴 제 마음도 편치 않았고, 진 제 처도 별로 속상해 하지 않았습니다."부부가 자신의 삶을 적은 자전 기록 '우리 집은 어디인가'(마음산책) 1·2권이 나왔다.

지난해 중국에서 출간된 '천애기객(天涯棋客)'의 여기저기를 새로 쓰고 새 얘기를 덧붙였다. 1권은 루이, 2권은 장 중심의 이야기다.

'우리 집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은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닌 이들의 삶을 상징한다.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난 루이는 한 가지 재주만 있어도 살 수 있다는 부모의 지론에 따라 10살 때 바둑돌을 잡았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기사가 된 그는 1980년 국가대표가 됐고 86년 제2회 중일 슈퍼대항전 결승에 오르는 등 선전했다.

이듬해 산샤(三峽)에서 열린 중일대항전은 삶의 전기가 됐다. 대회 진행 중 규율을 어기고 일본 남자 기사의 방에서 연습바둑을 둔 일로 심한 질책을 받아야 했다.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둑을 둔 것이 전부였지만 이 때문에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더 이상 바둑을 둘 수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90년 일본으로 떠난다. 그러나 냉대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가 일본 여자 바둑계를 평정할 것으로 우려한 일본 바둑계가 정식 경기 출장 기회를 이런 저런 핑계로 봉쇄했다.

힘겹게 살고 있던 일본에서 93년 장과 결혼했다. 장은 타이위안(太原)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바둑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84년 중일 슈퍼대항전에서는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 등 내로라하는 일본의 고수를 격파, 5연승의 기록을 세운다. 루이를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특히 루이가 '산샤사건'으로 괴로워하자 따뜻이 위로하면서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는 1990년에는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바둑을 지도해 달라는 샌프란시스코 바둑협회의 요청을 받아들여서였다. 그러나 바둑 인구가 적어 먹고살기조차 힘들었다. 영어가 짧아 불리한 조건의 계약에 서명한 일도 있었다.

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두 사람은 결혼 후 잠시 일본에 살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삶의 불안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재미 프로기사 차민수 4단과 가까워 졌고 그의 주선으로 99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뒤돌아보면 모든 게 불투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불안을 다 떨쳤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부부는 이제 김치를 맛있게 먹을 정도로 한국인이 다 됐다. 무엇보다 마음 놓고 바둑을 둘 수 있는 환경이 부부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이들은 한국 바둑계가 아무런 차별 없이 대해 준 사실에 늘 고마워한다. 목진석 김승준 같은 기사와는 테니스 농구 축구를 같이 할 정도로 가깝다. 이들은 조훈현 서봉수에게 존경심을 나타내고, 이창호 유창혁의 실력에 감탄하며, 한국 바둑계의 가족적 분위기를 부러워한다.

이들은 걸출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루이는 2000년 제43회 국수전에서 이창호 조훈현을 차례로 꺾고 우승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들은 "아무리 지옥 같아도 바둑을 둘 수 있으면 천국이고, 아무리 천국 같아도 바둑을 둘 수 없으면 지옥"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우리 집'은 바로 '바둑을 둘 수 있는 곳'이며 , 그래서 이제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다.

"오랜 시간 찾아 헤맨 '우리 집'이 바로 한국이거든요. 집을 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사진=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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