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베일리 등 지음·안진환 옮김 해바라기 발행·3만8,000원대표 저자인 스티븐 베일리는 런던 '디자인 박물관'의 창시자로 1989년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 문학 훈장을 받았다. 나머지 20여명의 필진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서 '건축과 에로티시즘'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미술로 그 시대를 탐구하는 미술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그 하위 분야인 미술 미시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커피나 향료 등 생활 주변의 소재로 재미있게 역사를 풀어 나가는 다른 미시사 서적과 달리 성의 역사를 설명할 다양한 소재를 포괄적으로 주무르고 있다.
이 책은 다소 저급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춘화나 선정적 광고사진 등의 성애 장면이 자연스러운 현상인 동시에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SXE'라는 제목도 부정적이고 식상할 수도 있는 'SEX'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려고 의도적으로 철자 순서를 바꾸었다. 책에 나오는 'FCUK―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광고들'도 같은 이유로 철자 순서를 살짝 바꿨다.
책은 간통, 사이버 섹스, 카마수트라, 페티시즘, 광고, 비유럽권 춘화, 고대 역사, 건축, 매춘, 그리고 최고 섹스 파트너 등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삽입된 200여장의 춘화와 만화, 사진 등은 대부분 영국 '춘화연구회(Erotic Print Society)' 소장품으로 이 책에 처음으로 공개해 희귀한 것들도 많다.
그러나 성에 관한 인문학적 백과사전이어서 '성생활을 100배 즐기는 방법'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광고에 반라의 여성모델이 등장하는 이유는 "광고에서 성보다 더 강력한 느낌이나 행동을 전달하는 것은 없다"는 말로 설명된다. 하이힐과 까만 스타킹의 조합과 성, 건축가 존 포슨이 고른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등 세계의 에로틱한 건축물에 대한 관점도 흥미롭다.
동서양, 또는 나라별로 춘화는 어떻게 다를까. 마네나 고야의 누드화에 비해 동양의 춘화는 본질적으로 실용적 관점에서 제작됐다고 이 책은 밝힌다. 중국의 경우 섹스 매뉴얼로서 만들어졌고, 일본도 중국과 비슷하지만 묘사가 훨씬 사실적이고 노골적이다.
'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 책은 명확한 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저 독자의 성 지식 창고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인문서여서 따분할 것이라는 염려는 때로는 시원하고, 때로는 아찔한 그림들이 씻어 준다. 다만 이 책이 '성'은 당대를 들여다 보는 창이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달리 춘화 보기에 빠져 춘화 읽기를 놓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어쩔 수 없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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