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대대적인 걸프만 파견과 이라크 정부의 결사항전의 의지로 이라크 전쟁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최근 전쟁을 피하거나 최소한 지연시키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주목할 만한 변화는 미국의 혈맹 영국에서 감지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9일 영국 정부가 유엔 무기사찰단이 이라크의 유엔 결의 위반을 입증할 증거를 찾아낼 수 있도록 가을까지 개전을 연기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당장 군사행동에 나설 국제법적 명분이 없다고 판단한 영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국제적으로 옥죄기 위해 사찰단에 좀더 많은 시간을 부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을까지라면 사찰단이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증거를 찾아내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면서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잭 스트로 외무부 장관이 전쟁 발발 가능성을 40% 이하라고 언급한 데 이어 제프 훈 국방부 장관이 스트로 장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일련의 사태는 영국 정부 내에 이라크전에 대한 이견이 커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개전 여부와 그 시기는 전적으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달렸지만 토니 블레어 총리가 '부시의 푸들(애완견의 일종)'이라는 비아냥까지 받을 정도로 미국과 유착된 영국이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부시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7일 무기사찰단에 더 많은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언급, 전쟁이 늦춰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전쟁을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도 활발하다. 유럽연합(EU)이 중동 국가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중재외교에 들어갔고, 최근에는 걸프 국가들과 러시아에서 후세인 대통령을 망명시키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설이 제기됐다.
이라크 당국은 후세인 망명설에 대해 "있을 수도 없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부인했지만 소문은 유럽·중동 외교가와 언론을 통해 연일 흘러나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 데일리 텔레그라프 등 유력지들은 후세인의 망명지로 리비아, 러시아, 이집트, 벨로루시, 모리타니아, 쿠바 등 구체적 국가까지 거명했고, 독일 신문 타게스 차이퉁은 미국과 러시아가 평화적 해결책의 일환으로 후세인의 퇴진과 망명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여러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피할 가능성은 여전히 적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측은 미국의 대 이라크 시각이 후세인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집권 바트당, 보안기구, 공화국수비대 등 정권 전체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력을 동원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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