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안모(35)씨는 지난해 12월 계약기간이 만료돼 건물주인과 재계약을 하려 했지만 터무니 없는 요구에 아연실색했다. 보증금 3,000만원과 70만원의 월세를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140만원으로 2배 이상의 임대료를 요구하는 주인과 끝내 타협을 보지 못한 안씨는 다른 곳에서 학원자리를 찾고 있다.영세 임차상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지난해 11월 시행돼 두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임차인들은 집주인의 무차별적인 임대료 인상강요에 시달리는 등 법의 효력이 무색해 지고 있다.
특히 법이 지난해 11월 이후 임대차 계약을 맺은 임차인만 보호하고 있어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 임차인들은 집주인의 임대료 인상요구에 아무런 대응을 못한 채 피해를 입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임대료 부당인상 등의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민생보호단 홈페이지에 제보된 사례만 200여건. 대부분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의 무리한 임대료 인상요구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호소다. 민노당 임동현 정책부장은 "기존 임차인이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재계약이 성사돼야 하기 때문에 재계약을 앞둔 임차인은 집주인의 무리한 요구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며 "계약이 주로 1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올해 재계약을 앞둔 임차인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일정 금액 이하의 임대보증금(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 2억4,000만원)을 내는 상가임차인이 세무서에서 확정일자를 받을 경우 5년간 계약갱신요구, 임대료 인상 제한, 임대료 우선변제 등의 권리를 부여받는다는 것이 골자. 그러나 법 시행이전부터 이 같은 보증금의 상한규정이 집주인의 무리한 임대료 인상요구를 불러왔고 시행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있다. 임대사업자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대폭 인상해 보증금 상한선까지 올려 놓으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아도 되고 과세당국에 임대소득이 노출당할 우려도 없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11월 법을 시행하면서 기존 세입자에 대한 보호조항을 마련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사태를 예견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계약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함에 따라 세무서에서 발급하는 '확정일자 제도'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세청이 법 시행직전인 지난해 11월까지 확정일자를 발급해 준 건수는 모두 10만여건으로 전국 235만 임차상인의 4.3%만이 법의 보호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후 2개월동안에도 발급건수는 크게 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재계약자의 확정일자 신청은 많지 않아 신규사업자 위주로 확정일자 발급안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환산보증금의 상한선 폐지와 기존 계약자에 대한 보호내용을 추가하는 방향의 법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또 부당하게 임대료를 인상하는 건물주에 대한 현실적인 제재방안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임대료 부당인상자 신고센터'를 마련하고 임대료를 과다인상하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방침을 밝혔지만 이와 관련한 세무조사는 한번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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