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 고장에선]당진군 신평면 "함상공원 마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 고장에선]당진군 신평면 "함상공원 마을"

입력
2003.01.10 00:00
0 0

"횟집, 술집 말구 뭐 볼게 있었남유. 우리찌리 말루다가 관광단지라고 허기도 낯뜨거운 일이었지유."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를 나와 국도38호선을 타고 승용차로 10분이면 닿는 충남 당진군 신평면 운정리 삽교호 관광단지. 주민들 말마따나 '길 몰라서 못 찾아올 리 없는 동네'에 2∼3㎞ 간격으로 관광안내 표지판이 줄줄이 섰다. 그 남다른 '친절'에 관광객들의 기대감도 부풀지만 막상 도착하면 실망하기 일쑤. 이름이 관광단지지 볼거리라야 '바다를 옥토로 만들었다'는, 이제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삽교방조제(3.3㎞)와 비운의 대통령에 대한 곱씹기 싫은 추억이 있을 뿐. 단지내 인프라라고는 공용 화장실과 길 따라 늘어 선 횟집 58곳, 자장면 가게 등 일반음식점 6곳, 조개·건어물 상가와 단란주점, 노래방이 전부였다. 방조제만 하더라도 80, 90년대 간척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군 내에만 대호(7.8㎞) 석문방조제(12.8㎞) 등 더 긴 것들이 잇따라 들어섰고, 횟집촌도 삽교 들머리부터 한진, 안섬, 성구미, 장고항, 왜목, 도비도 포구에 이르는 해안길 50여㎞에 널려있는 터.

"그게 워디 관광경기였겄시유? 길목이어서 사람들이 오고가다 보니 그냥저냥 버틴거지유…." 불안해진 주민들이 선택한 것이 '함상공원'이었다.

퇴역 군함을 활용한 함상공원 건립 아이디어는 1998년 충남도에서 비롯됐다. 민간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해군의 모습을 내포(內浦·내륙과 포구) 문화권의 들머리에 유치해 관광객을 끌어들이자는 구상. 도의 계획에 아산 보령 서산 태안 등 도내 6개 시군이 응모했고, 당진군도 사활을 걸다시피 매달렸다. 퇴역 장성 등 해군과 인연이 있는 출향 인사들이 앞장을 서고, 군민들도 발을 벗고 나섰다. 신평면 개발위원회 인사들과 19개 이장단은 아예 '신평면 번영회'를 조직, 사업비를 보태겠다고 나섰다. 군 관계자는 "가까운 평택에 해군 2함대사령부가 있다는 인연에다 지역 주민들의 열성이 감응했던지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해군측은 고철로 팔면 1억 여 원의 예산을 남길 수 있는 4,000톤급 상륙함(화산함)과 3,500톤급 구축함(전주함) 등 2척을 무기한 무상 임대방식으로 내놨다. 2000년 10월, 서해안 사리(만조)에 맞춰 삽교호 갑문을 열고 수심을 확보한 뒤 경남 진해사령부에서 군함을 예인했다. "삽교 해안에 배가 모습을 드러낸 날, 마을 주민들부터 난리도 아니었지유. 우리도 처음보는 군함인디 오죽했것시유."

운영 법인((주)삽교 함상공원)도 만들었다. 회사는 충남도와 당진군이 각각 5억5,000만원, 마을 수협과 신평면 번영회가 각각 5억원, 전시·기획 전문 벤처기업인 시공테크사가 5억원을 출자, 초기 자본금 26억원으로 출범했다. 번영회는 이장단을 통해 출자자 모집에 나섰다가 하도 인기가 좋아 최고 한도(1,000만원)를 정하기도 했다. "장사가 될 지 모르지만서두 모금을 시작하자 횟집 사장서부터 농사꾼까지 110명의 주주들이 금새 모입디다. 모두 마을 발전을 위헌다는 일심으루다 돈을 낸거지유." 신평면 번영회 곽명용(57) 회장은 그 과정에 주민들로부터 불평 한 마디 못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반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공원이 들어설 자리가 바닷가 매립지이고 보니 그 자리에서 10여년 째 조개나 멍게팔던 '함티(함태기) 장사꾼'이나 가건물에서 회를 팔던 이들로서는 생계 터전을 빼앗기게 된 것. "군청 앞에 몰려가 데모도 했제. 함상공원 들어서더라도 관광객들이라야 코흘리개 단체관광객이나 가족단위일 거 아니겄어." 한 상인의 말에 곁에 섰던 토박이 장사꾼 홍용식(55)씨는 "한 마디로 회 손님은 아니라는 얘기"라고 거들었다. "남·녀 데이트족이나 친구들끼리 와야 돈이 되는데 가족끼리 오면 남자가 한 접시 먹자고 해도 안사람이 말리니까 별 재미가 없어." 하지만 상인들은 위쪽에 가건물을 지어준다는 군의 약속을 받고 양보했다고 했다. "다시 단골 모으고 자리잡는 데 2, 3년 걸리겠지만 주민들이 마을 살리자고 정헌 일인데 계속 다리만 걸믄 뭐하누." 당초 걱정했던 것 보다는 웬만큼 장사도 된다는 임시상가 상인들은 연내 함상공원 앞쪽에 정식 상가를 짓고 이주할 계획이다. 임시상가 총무 김승태(50)씨는 "이제, 저게 손님들을 왕창 왕창 끌어와야 회집들도 빨리 자리를 잡지 않겄어. 저게 희망이여"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해 4월11일 개장한 함상공원은 기대 밖의 '대박'을 냈다. 지난 해 말까지 무려 35만6,000여명의 관광객을 유치, 7개월여 동안 입장료 수입 등 약 3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 지자체가 벌인 수익사업 치고 두고두고 예산 털어먹지 않는 사업이 귀한 판에 함상공원 주주들은 오는 3월 주주총회때 수익금 배당이냐, 재투자냐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일 참이다. 98, 99년 연간 27만 여 대 선에서 정체됐던 삽교호 내방 관광객 차량도 지난 해 38만대로 급증했다.

사업법인측은 함상 테마공원 성공 여세를 몰아, 이 일대를 본격적인 해양 테마공원화할 욕심을 내비쳤다. 회사 관계자는 "인근 갯벌 부지를 추가 확보해 해병 병영체험공원을 세우고, 크루즈선을 활용한 리조트사업도 구상중이지만 그 역시 주주(지자체·주민)들의 결심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새마을운동과 식량증산 이데올로기 홍보용으로 출발한 삽교호 관광단지의 빛 바랜 명성은 주민들의 힘과 의지로 21세기형 테마관광단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당진= 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사진 김재현기자 dreamer@hk.co.kr

■함상생활 그대로 재현

"아빠, 저거 쏘면 진짜 대포알이 나가?"

7일 오전, 함상공원 입구. 수륙양용 장갑차와 해병들의 땀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상륙함 화산함(전장 100m)에는 부모들의 손을 잡아 끄는 꼬마 손님들의 탄성으로 가득했다.

함정 안은 해군의 복제와 해병의 활약상, 낙하산, 40㎏ 해병 군장체험 등 코너가 마련돼 무인 센서 음성·영상 안내시스템이 함상생활의 모든 것을 친절히 안내하고 있었다. 수병들의 숙소와 취사장, 휴게실 등이 실제 모습 그대로이고, 전자 장비가 아닌 40㎜ 함포와 기관포 등 각종 장비도 관광객들이 실제 작동해볼 수 있도록 했다. 화산함부터 시작하는 관람루트는 대잠수함 작전의 선봉이었다는 구축함인 전주함(전장 120m)의 밑바닥까지 스치듯 구경하는 데만도 족히 1시간 코스. 하지만 설명을 듣고 작동까지 해보려면 최소 3, 4시간은 걸린다는 게 공원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관리동 2층의 3차원(3D) 영상관에서는 15분짜리 무료 입체영화(작품명 '해룡')가 한창이었다.

군함 내부 전시공간 단장에만 28억원을 들였고, 예산 초과로 운영법인은 한 차례 증자를 하기도 했다. 그럴듯한 '해군홍보관' 하나 없는 해군사령부로서는 폐함 2척 내주고 첨단 홍보관을 얻게 된 셈.

그래서 역대 해군참모총장 가운데 이 곳을 들르지 않은 이가 없고, 주요 행사 때마다 해군 군악대와 의장대 공연 서비스로 관광객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먼저 번 해군 행사 때는 이 공원에 전·현직 별 50개가 한꺼번에 뜨기도 했다"며 "이쯤 되면 해군에서도 공원 운영비를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최윤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