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안암동(安岩洞)의 조선초 지명은 고암(鼓岩)이었다. 고암은 지금의 고려대 구내 북바위를 지칭한다. 고암이 안암으로 바뀌게 된 사정이 감동적이다. 당시 이곳에 살았던 문정공 한계희(韓繼禧)는 매우 청빈한 선비였다. 권세가 한명회(韓明會)의 제종형인 그는 가난 때문에 나물로 연명했지만 주위의 도움을 한사코 거절했다. 보다 못해 한명회 등이 논 열섬지기를 억지로 받게 했으나 그는 수확한 벼를 어려운 이웃에게 전부 나누어주었다. 이 같은 자선행위는 그의 자손들에게 계승됐고, 이에 감동을 받은 주민들이 동네이름의 앞 글자를 안(安)자로 바꾸어 불러 안암동이 됐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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