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제2의 베니스가 될 것인가.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홍콩이 15세기 아시아 무역 독점권을 상실하면서 쇠망한 베니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는 9일 홍콩 경제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상하이(上海)와 베이징(北京)의 부상 등으로 밀리면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경제의 심각성은 8일 둥젠화(董建華)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의 입법원 시정 보고에서 잘 드러난다. 董 장관은 공무원 봉급 삭감과 신규 임용 중지, 각종 세금과 수수료 인상을 통한 재정적자 해소 등 새 전략을 제시하면서 "우리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전례 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토로했다.
사실 홍콩 경제는 4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디플레이션, 늘어나는 예산 적자, 대 중국 중개무역지로서의 역할 감소 등으로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홍콩 부의 절반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97년에 비해 60% 이상 감소하면서 가계의 부는 3,600억 달러나 감소했다. 소매물가는 46개 월 이상 연속 하락했다.
지난 해 7월 제너럴 일렉트릭(GE) 아시아 지역 사무소가 상하이로 옮겨간 것을 비롯, 홍콩에 본사와 지사를 두고 있는 많은 다국적 기업이 중국으로 떠났다.
상하이는 펀더맨틀(경제적 기초)이 상대적으로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센터 및 중개무역지로서의 홍콩의 지위를 흔들고 있다. 경기 침체로 조세 수입이 줄어들면서 재정 적자 규모도 지난해 11월 말 현재 모두 91억1,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홍콩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긴축 재정과 세금 인상 등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는 홍콩의 문제는 경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수와 주민들의 신뢰 추락, 적절한 제도의 미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입법을 추진 중인 반(反)폭동법의 경우 중국 본토식의 압제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고, 잦은 정부 개입과 정책 수정은 비관적인 관측을 낳게 한다.
한편 홍콩의 침체가 너무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재정의 경우 수년간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017억 홍콩달러의 예산잉여금이 남아 있고 부채는 거의 없을 만큼 양호하며, 약간의 세금 인상과 지출 감소를 통해 재정 적자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WTO 가입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홍콩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95년 2.9%에서 4.3%로 늘어났는데 이중 상당 부분이 홍콩 기업인이 본토에 투자한 기업에서 나왔다. 최근 홍콩에서 기업을 공개하는 중국 기업이 많은 것도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서의 입지가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홍콩의 미래는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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