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 시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코보홀. 2003년 디트로이트 모터쇼(북미국제오토쇼)가 열리고 있는 이곳에서 릭 왜고너 GM 회장은 자동차 산업의 혁명이 이미 시작됐음을 알렸다. GM이 향후 5년 동안 휘발유와 전기를 함께 쓰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차를 대폭 늘려 새 에너지 차량 분야에서도 선도자가 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GM은 이날 하이브리드 픽업 트럭은 물론 하이브리드 차보다 한 단계 앞선 수소 연료전지 차량인 '하이 와이어'도 공개했다. 수소 연료전지는 휘발유 대신 수소로 전기를 발생시켜 엔진을 돌리는 것으로,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차세대 핵심기술이다. 한마디로 수소 연료전지 차량은 지금까지의 차와는 완전히 다른 혁명적인 차인 것이다. 하이 와이어는 지난해 모터쇼에서 '오토노미'라는 컨셉트카로 발표됐으나 이번에는 실제로 움직이는 차로 등장했다. 또 포드자동차는 수소 엔진을 탑재한 '모델U'를, 메르세데스 벤츠도 순수하게 수소로만 움직이는 A클래스 연료전지 모델을 출품했다.
1989년부터 수소 연료전지 차량을 개발해온 일본의 혼다자동차는 이미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최초로 수소 연료전지 차로 인증받은 4인승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FCX'를 로스앤젤레스(LA) 시정부에 임대했다. 이 차는 현재의 휘발유 차량처럼 일상 운행이 가능한 차로, 혼다자동차는 앞으로 2년안에 캘리포니아주와 일본에서 약 30대의 FCX를 운행시킬 계획이다.
내연기관 시대와 연료전지 시대의 과도기로 휘발유와 전기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시대는 이미 무르익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연료 효율이 좋은 주행 상황에서는 휘발유를 쓰고,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전기모터를 돌림으로써 기존 휘발유 차량보다 연료를 50%나 절감할 수 있는 고효율 자동차다. 97년 하이브리드 차량을 처음으로 내놓은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현재 연간 500만대중 2만대를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생산하고 있다. 도요타는 2005년까지 하이브리드 차량을 연간 30만대 판매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밖에 포드 자동차는 자사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이스케이프'의 하이브리드 버전을 올해 안에 출시하고, 다임러크라이슬러도 하이브리드 트럭을 내놓을 예정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하이브리드와 연료전지 등 환경차가 2005년에는 전체 시장의 2%, 2010년에는 7%, 2015년에 22%, 2020년에는 42%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2010년에 성장기에 들어서고 연료전지 차량은 2020년에는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2010년부터 새 에너지를 쓰는 환경차들이 시장의 강력한 흐름으로 등장해 2020년에는 기존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기아차 미국 기술연구소의 조원석 소장은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문제 때문에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고, 석유자원이 머지않아 고갈될 것이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이 하이브리드 차량과 수소 연료전지 차량을 개발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미 강력한 이산화탄소 배출규제가 시행중이고, 유럽연합은 2008년부터 국가별로 배기가스를 규제키로 했다. 한마디로 환경차량을 개발하지 않으면 자동차를 팔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GM의 연구개발(R&D) 담당 부사장인 래리 번스는 "우리는 중장기적으로 하이브리드 차량보다는 연료전지 차량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향후 2∼3년간 연료전지 차량에 대한 원가 절감이 현실화하면 2010년쯤에는 양산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대표 주자인 현대자동차도 서둘러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및 수출국이지만, 엔진 등 핵심기술 개발 역량이 다소 뒤지기 때문이다.
95년부터 하이브리드차를 개발하기 시작한 현대차는 2000년에 베르나 하이브리드, 카운티 버스 하이브리드 등을 개발해 현재 5종의 하이브리드차를 시범운행하고 있다. 또 연료전지 차량의 경우 2010년부터 자체 기술로 생산하기 위한 산학연 합동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가 최근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수소 연료전지 차에 대해 인증을 받은 것은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가 세계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원석 소장은 "현대차는 2005년에 연료전지 차량을 소량 생산해 시장을 탐색한 뒤 2010년경에는 전체 생산차량의 3∼4% 정도 차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차나 연료전지 차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 비용과 실제 운행을 위한 수소 충전소 등의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긴요하다. 하지만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미흡한 실정이다.
미국에서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0년초 '프리덤 카'(Freedom Car)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등 연료전지 차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강력한 비전을 제시했고, 일본은 연료전지 차 개발을 위한 별도의 차관회의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의 임태원 부장은 "환경차 개발에서 뒤처지면 앞으로 10년내에 한국 자동차 산업은 외국 기업의 하청 기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며 "에너지 수급 정책과의 연계 등 범 국가적인 프로젝트의 추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연간 매출액이 1조 달러를 넘고, 1,000만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제조업인 자동차 산업은 이제 '굴뚝 산업'이 아니라 신기술의 경연장이자 21세기의 신(新) 기간산업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디트로이트(미국)=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 車산업 왜 성장동력인가
'반도체는 기업 혼자 잘하면 된다. 그러나 자동차는 모든 산업이 팀 플레이를 해야 경쟁력이 생긴다.'
자동차 업계는 고뇌이자 자부심을 이렇게 말한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향후 6∼10개 메이커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생존의 화두(話頭)와 씨름하고 있다. 살벌한 인수·합병 바람속에 국내에선 삼성차, 대우차의 주인이 르노와 GM으로 바뀌었다. 세계적으로는 자동차 업체가 약 30개로 줄었지만 생존 가능한 '규모의 경제'에 도달한 업체는 10개 뿐이다. 시장내 공급 과잉은 여전하고, 전략적 제휴 등 모습을 달리한 생존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빅3를 앞세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자동차 산업을 포기하지 않고 성장의 동력원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연관 산업과 파급 효과가 크고 넓기 때문이다. 고용 효과만 해도 현대·기아차는 부품업체까지 포함, 약 40만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2001년 자동차 수출액은 133억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8.3%를 차지했으며 자동차로 인한 무역흑자는 128억 달러를 전체 무역수지 흑자 93억달러보다 많았다. 자동차 산업이 앞으로도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산 자동차의 국제적 위상은 최근 눈에 띄게 높아가고 있다. 그간 한국산 차는 가격경쟁력에 의존해 미국시장에서 경쟁 차종보다 가격이 20% 가량 낮았다. 하지만 지난해 빅3와의 가격차는 8%로 좁혀지고, 시장점유율은 더 올라 현대차는 2.5%에 근접했다. 심지어 미국인의 국민차로 불리던 도요타의 '캠리'가 현대차에 추월당하고, 크라이슬러와 포드가 현대차와 비교한 원가 기획서를 작성하고, 벤츠마저 벤치마킹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선행개발센터 권문식 소장은 "불과 2년 사이에 그랜저XG, 쏘렌토, EF쏘나타, 싼타페 등 해외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차종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현재 환경, 에너지, 소음, 교통 등 자동차의 기술환경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권 소장은 "현대차는 이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기 위해 기술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며 "올해 연구·개발비만 세계 100대 기업 규모인 2조원을 넘는다"고 했다.
자동차부품업체들이 품질 및 기술등에서 글로벌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부품업체들이 현재처럼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국내 완성차업체에만 의존할 경우 세계적인 수준의 품질경쟁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산 자동차부품업체들이 품질수준을 향상시켜 선진국 완성차업체에 대한 납품비중을 높여나가야 한국을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기지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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