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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92)노보그라드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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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92)노보그라드 대학살

입력
2003.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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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0년 1월9일 러시아 황제 이반4세의 군대가 노보그라드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노보그라드에 반역의 기운이 감돈다는 말을 듣고 1주일 전에 군대와 함께 이 도시에 도착했다. 군대는 도착 즉시 도시 주변에 나무벽을 쌓고 교회와 수도원을 모두 폐쇄했다. 사람들이 피신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일부 성직자와 상인들은 황제에게 돈을 바치고 죽음을 면했다. 황제는 그 돈을 군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곧 시작될 살인 작전에 대한 선금이었다.살인 파티는 5주 동안 계속되었다. 군인들은 닥치는 대로 죽였다. 황제는 제 군인들이 제 신민을 찔러 죽이고 태워 죽이고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것을 현장에서 지켜 보았다. 1월9일부터 2월12일까지 6만 명이 넘는 노보그라드 주민이 학살 당했다. 황제는 살아남은 주민들을 '사면'한 뒤, 이 학살의 책임은 주민들을 잘못 인도한 노보그라드의 대주교에게 있다고 선언하고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이반4세(1530∼1584)는 3세에 즉위한 뒤 51년간 러시아를 다스렸다. 그는 치세 후기에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공포 정치를 펼쳐 '무서운 이반' 또는 이반뇌제(雷帝)라고 불린다. 폭군들이 드물지 않게 그렇듯, 그도 젊은 시절에는 총명한 군주였다. 어린 시절 중앙 대귀족들의 전횡으로 어려움을 겪은 이반4세는 친정(親政)을 시작한 뒤 지방 귀족층의 도움으로 중앙 귀족을 제압하고 행정·사법·군사·교회제도의 중앙집권화에 힘썼다. 서시베리아를 정복해 동방 진출의 바탕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많이 나갔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굳게 신봉한 그는 귀족의 날개만을 꺾은 것이 아니라 신민 전체를 폭정으로 다스렸고, 만년에는 말다툼 끝에 자기 장남을 죽이기까지 했다.

고 종 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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