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그러나 만만찮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대략 세가지 정도의 딜레마에 대한 돌파전략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첫째는 노 정권은 정권교체가 아닌, 같은 정당 같은 정치 계열의 연속이라는 성격을 가지면서 동시에 정권교체 이상의 시대교체 혹은 세대교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른바 연속성과 단절성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인수위원회도 정권인수가 아닌 정책인수적 성격이며, 정책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인수위 인사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제3의 계열로 구성함으로써 양면성을 함께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결국 논리적으로는 '단절(변화) 속의 연속'이라기 보다 연속 속의 단절(변화)에 가까운 형태로 기울 것 같다. 이것이 실천과정에 살려지기 위해서는 변화의 비전과 전략이 보다 고차원적이고 강력해야 하는데, 그것이 흔들리면 '연속 속의 연속'으로 귀착되기 쉽다.
둘째 당선자는 소수 여당의 후보이고, 그 중에서도 소수 정파의 대표이다. 당선자 지지자는 오히려 국회나 당 밖의 '노사모' 회원, 진보적 지식인들, 그리고 2030 세대 등이다. 이 경우 국민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화하는 정치로 갈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포퓰리즘으로 흐르기 쉽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 역시 당내 기반이 약하여 국민적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보다는 개혁에 대한 국민적 피로가 쌓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 당선자는 고이즈미 보다 더 좁은 길로 가야 할 판이다. 김영삼 정부는 초기 청와대 개방이나 칼국수 등의 인기몰이 정치로 약 90%의 지지율을 얻은 바 있으나 지금은 그러한 정치 제스처의 약효가 별로 신통할 것 같지 않다. 더구나 지금의 경제여건은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경기 활성화나 가계빚 탕감, 공적자금 살포 등에 의한 내수진작형 경기부양정책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형편이라 경제적 인기정책이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소수 정권이 흔히 휘두르는 인기몰이 정치의 길마저 모조리 차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비인기 개혁정책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셋째는 노 당선자는 정서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친미는 아닌 것이 분명한 것 같고 그것에 대한 미국 측의 우려와 반발 또한 만만찮은 것이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세계는 미국 일극지배 하에 놓여 있고 따라서 중·일·러 같은 큰 나라들도 국익차원에서, 특히 9·11 이후 친미적 노선을 걷고 있다. 말하자면 사상적으로는 반미지만 전략적으로는 친미다. 그러나 한국에는 정서와 전략 혹은 일본처럼 속마음(本音)과 겉모습(建前)을 구별하는 문화가 별로 없다. 노 당선자가 추구하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국의 조정자 역할이나 SOFA개정을 중심으로 한 대등한 한미관계 수립이나 중·일·러 등을 경제적으로 묶어보려는 동북아 경제권 구상 등은 모두가 미국과의 심각한 마찰의 문을 통과해야 열리는 좁은 길이다.
지금 한국의 무역과 투자는 중국으로 집중돼 가고 있고, 기술협력 역시 중국쪽으로 기울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한국경제는 중국경제권에 편입되고 있다는 시각이 만만찮다. 경제적 편입은 곧 정치적 편입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아직 중국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경제적 이익보다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경제적 이익이 훨씬 많다는 포스터 카터 교수의 말이 새삼 떠오르지만 그보다는 미·중·일·러 속에서의 조정자적 역할로 얻을 수 있는 정치경제적 이익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세 가지의 딜레마에 대한 노 당선자의 돌파전략은 무엇일까. 나는 DJ 당선자께 '집이라도 팔아서' 추종자들께 나눠주며 5년 후에 만나자고 작별을 하고 그 '감동의 연쇄'로 재벌개혁을 할 것을 건의한 바 있다. 노 당선자는 선거자금으로부터 자유롭다. 이제 '집이라도 팔아서' 선거공로자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당분간 헤어져 감동적 자유의 몸으로 국민 앞에 서기를, 그리고 지금까지의 반미적 정서나 반대기업적 사상과도 잠시 헤어져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 보다 전략적 접근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이순신 장군의 '상유십이(尙有十二)'의 비장미 혹은 장엄미로 뚜벅뚜벅 정면돌파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누군들 정신적 '노사모' 회원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김 영 호 前 산업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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