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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곧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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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곧 지나가리라"

입력
200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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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는 친구 H에게서 새해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40대 중반으로 중소기업 임원인 그는 지금도 '우리 친구 아이가'를 훈장처럼 얘기한다. 지난 대선때 젊은 층이 노무현 당선자를 찍지않게끔 '배운 사람들'이 도시락 들고 다니며 말려야한다고 열을 올렸던 그는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한자리 할 것처럼 친구들에게도 부패정권 심판의 당위성을 외쳤다.대선 결과에 대해 그가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는지는 얘기할 필요도 없다. 노인네들처럼 자리에 드러눕지는 않았지만 주변 친구와 직장 선후배중 노무현 당선자를 찍은 사람들을 알아내 역사의 배반자처럼 몰아세워야 좀 화풀이가 될 만큼 충격이 컸다.

요즘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 쪽에는 아직도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운 사람들이 있다던데…. 마음정리가 좀 됐어?"

"안하면 어쩌겠어. 이민갈 것도 아니고…. 세대혁명이니 정치패러다임의 변화니 인터넷미디어의 승리니 언론에서 잘도 써대던데, 시대가 변했다면 따라가야지."

"근데 왜 선거때 난리를 친거야?"

"사실 아직도 결과를 납득 못해. 이해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하여튼 민주당 후보가 아니라 노무현당이라고 한 것, 인사쇄신 및 부패청산을 비롯한 국정시스템 전반을 개혁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떻게 하는 지 지켜볼거야. 벌써 2004년 총선이 기대돼."

"요즘 보기에 당선자가 잘하는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인수위 면면을 보고 '정권이 바뀐 게 아니라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하던데. DJ가 됐을 때 혁명이 일어난것처럼 얘기했지만 이른바 사회의 메인스트림은 변화가 없었잖아? 근데 지금은 뭔가 낯설어."

"몰라. 머리 아픈 얘기는 보도일꾼끼리나 해. 다만 한가지, 선거때는 민주당의 민자도 입에 올리지 않던 사람들이 요즘 민주당이 재집권한 것처럼 떠들고 활개치는 것은 기분 나빠. 그리고 사람들이 입으로는 당선자에게 과욕이나 과속하지 말라고 주문하면서 한쪽으로는 당선자가 도깨비방망이나 가진 것처럼 요구를 쏟아내는 것도 맘에 안들어. 노무현이라고 뭐 용빼는 재주 있겠어, 주어진 한계내에서 최선 아니면 차선을 택하는 거지."

"당선자가 뭐부터 해야돼."

"기득권 타파니 어렵게 말할 것 없이 좀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 좁은 땅덩어리에 별천지나 특구는 왜 그리 많은지…. 참 당선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우화가 하나 있어. 언젠가 스포츠지 만화에서 본건데."

H가 들려준 얘기는 다음과 같다.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어느날 궁중의 세공장을 불러 자신을 기리는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고 지시하며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고, 반면 절망에 빠졌을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있는 글귀를 새겨넣도록 해라"고 주문했다.< p>

반지를 만들어놓고도 적합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며칠을 끙끙대던 세공장은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다. 세공장의 고민을 들은 솔로몬이 잠시 생각하다 써준 글귀는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였다. "왕이 승리에 도취한 순간 그 글귀를 보면 자만심이 금방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 중에 그 글을 보면 이내 큰 용기를 얻어 항상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 유 식 생활과학부장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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