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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생태기행]<1> "철새들의 낙원" 철원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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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생태기행]<1> "철새들의 낙원" 철원평야

입력
200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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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계미년 새해를 맞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 지역 일대를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탐방, 'DMZ 생태기행'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본보 송용창 기자는 지난달 말 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철원, 연천, 파주지역을 탐방한데 이어 새해에도 중동부 산악지역, 동해안 지역, 서부 해안지역 등을 답사하고 이들 지역의 비경과 생태 현황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이곳이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는 새들의 낙원입니다. "

지난달 27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민통선 내 해발 219m의 아이스크림 고지. 한 눈에 들어오는 철원평야는 숨막힌 세상을 단숨에라도 뚫을 듯했다. 사방 천지로 막힘 없이 뻗은 평야, 그 위로 새들이 화답이라도 하듯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날아올랐다.

환경운동연합 회원 10여명과 함께 나선 비무장지대(DMZ) 일원 생태기행의 첫 탐방지는 강원 철원군 철원읍, 동송읍, 북면 일대를 가로지른 4,332ha의 철원 평야였다. 철책선 건너 북한군 초소와 마주하는 남북 대치의 여전한 최접점이지만, 이 곳을 가르는 공기에선 더 이상 긴장도 일촉즉발의 위기감도 감지할 수 없었다.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와 독수리 등의 국제적 철새 도래지로 고요와 한적함 속에서 새들의 비상이 물결쳤다.

■독수리, 청소부에서 더부살이로

"저기 바보 같은 독수리 좀 보세요." 철원군 양지리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 한참을 가자 안창희(安昌熙) 경기북부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저수지 쪽을 가리켰다. 토교저수지 제방 위로 무려 280여 마리의 독수리가 늘어서 앉아 있었다.

몽골지역에서 겨울철 우리나라로 찾아오는 독수리는 매년 800∼1,000여마리. 올해는 부쩍 더 늘어 1,200여 마리나 찾아왔고, 이 일대에도 440여 마리가 모여 들었다.

하지만 한 지역에 많이 찾아오는 게 꼭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살아있는 생물을 사냥하지 못하고 사체만을 먹는 독수리에겐 먹잇감이 부족해지기 때문. 독수리들이 매년 수십 마리씩 아사하는 일이 잇따르자 마을 주민들이 죽은 닭이나 돼지 등 먹이감을 주지만, 독수리들의 자연 생존력은 그만큼 뒤처질 수 밖에 없는 딜레마도 생겼다. 철원 토박이인 진익태(陳翼汰)씨는 "독수리들이 달리 갈 곳도 없어 이곳에 모여드는데, 굶어죽는 것을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안창희 국장은 "독수리들은 자연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새지만 청소할 생태계조차 부족해지면서 인간의 신세를 지게 된 역설적 상황"이라고 전했다.

까치들이 먹잇감을 먼저 낚아채도 쫓아 내지 못하는 바보 같은 독수리지만 90㎝에 이르는 커다란 몸으로 비상하는 그 날개짓은 장관이었다. 눈발이 흩뿌리고 있는 하늘을 10여 마리의 독수리가 상공을 선회하자 일행들엔 일견 숙연함마저 감돌았다.

■박제화한 고귀한 새, 두루미

철원평야의 또 다른 주인공은 두루미다. 철원평야 한가운데 아이스크림 고지에 오르자 철원평야 사방에 두루미 수백 마리가 벼 낟알을 집어먹으며 노니는 모습이 펼쳐졌다. 기러기떼 수백 마리도 뒤질세라 철원평야를 수놓았다.

예로부터 학(鶴)이라 불리며 선비의 고고한 기품을 상징해온 두루미지만 지금은 지구상에 1,700∼2,00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 이중 550여마리가 국내에서 월동하고 철원평야에서만 500여 마리가 머문다. 황호섭(黃鎬燮) 환경운동연합 생태팀장은 "예전에는 경기, 충청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두루미는 달력 속 박제 동물에 다름없었다"며 "잃어버린 우리 문화의 숨결 하나를 DMZ가 보존해왔다"고 말했다.

■천혜의 새 둥지도 이제 흔들

철원읍 천통리 일대 온천 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습지대와 농경지의 낙곡 등 먹이감으로 두루미의 보금자리가 됐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문명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두루미의 서식 제일 조건이었다. 길게 뻗은 다리에서 나오는 우아한 기품 만큼 섬세하고 까다롭다는 뜻일까. 한국자연정보연구원 이기섭 박사는 "몸집이 큰 만큼 날아오르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곳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철원평야도 이제 인간 문명의 사정권에 들기는 마찬가지다. 취재진이 이동하는 길도 농산물 수송과 안보 관광 등을 위해 4년 전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아이스크림 고지에 남겨진 짓다 만 탐조대 흔적이 두루미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 했다. 철원군이 철새 관광을 위해 2001년말부터 철새 조망대, 주차장, 휴게소 등을 건설하려다 중단한 데는 엇갈린 이유가 있었다.

환경단체들은 탐조관광지 조성이 오히려 철새들의 서식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며 반발했던 반면, 지역 주민들은 탐조대가 설치되면 이 지역이 '철새 보호지역'으로 묶일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 지역 주민은 "경원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선 개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철원평야엔 벌써부터 남북 통일을 대비한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 을시년스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철원=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두루미는 추위 안타요

겨울철 우리나라를 찾는 두루미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세 종류. 흑두루미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재두루미가 2,000여마리 이상 우리나라를 찾지만, 500여 마리만 남고 대부분 일본 지방으로 건너간다. 두루미는 500∼600마리가 전부 철원 일대에서 월동한다.

영하로 떨어지는 매서운 날씨에도 더 따뜻한 남쪽으로 가지 않는 것은 두루미가 보기와 달리 추위를 크게 타지 않는 새이기 때문이다. 두루미는 두가지 체온을 가지고 있는데, 40∼41도를 유지하는 몸의 체온은 깃털로 감싸고, 추운 외부와 맞닿는 발 부위는 외부온도와 가깝게 유지한다.

발목에 '원더 네트'라는 일종의 열교환기관이 갖춰져 있어 발 끝에서 차가워진 정맥피가 더운 동맥피에 의해 한번 데워진 뒤 체내로 들어가고, 동맥피는 거꾸로 적당히 차가워져 발끝으로 간다. 혹한에도 동상에 걸릴 걱정이 없는 것. 두루미가 남하하는 가장 큰 이유도 추위 때문이라기 보다 먹이와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두루미학교 진익태 교장

"두루미가 찾아오는 겨울철이면 가출 나간 아이를 맞는 기분이죠."

올해 3년째를 맞는 철원 두루미학교 교장이자 생태사진가 진익태(陳翼汰 ·44)씨는 16대째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에서 살아온 토박이 철원 주민.

농사를 짓는 그지만, 두루미 등 철새에 관심을 두고 좇아 다닌지 10여년. 공무원들이나 조류학자들이 철원을 오면 일단 그부터 찾을 정도로 철원평야 철새는 언제나 그의 몫이다. 환경부의 철원 지역 철새 조사도 그의 손을 거친 것. 그가 철새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덕택에 마을에는 철새 모이주기 자원봉사단도 꾸려졌다.

"1988년쯤에 집 부근에서 농약을 먹고 죽은 오리 한 쌍을 발견했는데, 특이하게 생겨 박제를 해뒀어요. 근데 조류전문가들이 보더니 그게 희귀조인 호사비오리라는 거예요. 백두산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진 이 새가 국내에서 62년만에 박제로 발견된 것이라고, 다들 놀랬고 저에게도 충격이었죠. 이건 아니다 싶어 그때부터 철새, 특히 두루미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게 됐습니다."

2000년부터 초등학생과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두루미학교를 올해도 어김없이 준비중이다. 이달 13, 14일 이틀동안 철새 탐조요령과 철새 보호 등을 가르칠 예정. "철새들의 낙원인 이곳도 점점 방문하는 사람이 늘면서 새들이 위협받고 있어요. 언제 훼손될지 모르는 이곳을 지켜내기 위해선 우리 아이들부터 관심을 갖도록 해야겠죠."

"새들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며 그는 두루미의 모습을 담기 위해 어김없이 또 추운 철원평야로 나섰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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