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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91)미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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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91)미테랑

입력
200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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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8일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프랑수아 미테랑이 80세로 작고했다. 그 주 시사주간지 '레벤망 뒤 죄디'에 따르면, 미테랑이 죽은 다음날인 1월9일 프랑스 중앙 일간지들이 부고 기사에 할애한 지면은 140면이 넘었고, 지방 일간지들이 할애한 지면은 600면이 넘었다.그 날 프랑스의 대표적 일간지 르몽드는 파리의 가판대에서만 19만9천 부가 팔려나갔는데, 이 수치는 그보다 26년 전 샤를 드골이 죽은 다음날 이 신문이 팔려나간 수치와 비슷했다.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그 날 파리에서 15만 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이 수치는 1973년 장폴 사르트르가 이 신문을 창간한 이래 세 번째 기록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아니었는데도, 미테랑의 죽음은 그 만큼 프랑스인들에게 큰 사건이었다.

파리 대학 졸업 후 변호사 겸 언론인으로 일하던 미테랑은 제2차 세계대전기의 레지스탕스 활동을 거쳐 종전 뒤인 1947년 31세의 나이로 처음 입각했다. 그는 드골의 재등장 이후 20여년 동안 계속된 우파 정권 아래서 좌익 정파를 결집시키며 대통령직에 네 차례 도전한 끝에 1981년 현직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을 물리치고 사회당 출신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미테랑 아래서 오래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은 미테랑이 당선된 1981년 5월10일을 '빛과 어둠을 가르는 경계'라고 자찬한 바 있다.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처음 내린 조처는 사형제를 폐지해 프랑스 혁명 이래 200년 가까이 공포의 상징물 노릇을 한 단두대를 역사의 유물로 만든 것이었다. 미테랑은 개혁의 부작용이 몰고 온 두 차례의 좌우 동거 내각과 집권 말기 사회당을 만신창이로 만든 부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7년 임기를 두 차례 꼬박 채워 제5공화국 역사상 최장기 집권자가 되었다.

고 종 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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