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결코 낙관적이지 않은 현실을 살아오면서도 언제나 완전한 세상을 꿈꾸어 왔다. 완전한 세상이란 우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천재지변 전쟁 질병 등 온갖 위협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조화로운 세상, 모두가 마냥 행복을 만끽하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고대인들은 이러한 세상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특별한 공간에 존재한다고 상상했다. 이러한 공간을 유토피아(Utopia) 낙원(Paradise) 이상향(理想鄕) 등으로 부른다. 신화 속에는 낙원 등에 대한 묘사가 많다. 왜냐하면 신화 시대야말로 인류가 신의 섭리 혹은 자연의 질서에 가장 가깝게 살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올림포스산은 신들의 대표적 낙원이고 히브리 신화 '창세기'에서의 에덴 동산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잠시 머물렀던 낙원으로 유명하다.
중국신화에서의 낙원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계통이 있다. 하나는 곤륜산(崑崙山)을 중심으로 한 산악의 낙원신화 계통이고 또 하나는 삼신산(三神山)을 중심으로 한 섬의 낙원신화 계통이다. 먼저 곤륜산 낙원신화에 대해 알아보자.
곤륜산이 중국신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 어떤 지역 보다도 크다. 곤륜산은 땅의 기둥이자 머리이며 천지의 중심으로 일컬어진다. 곤륜산은 또한 온갖 신들의 거처라는 점에서 중국의 올림포스산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곤륜산은 특히 신중의 신인 황제(黃帝)와 여신중의 으뜸인 서왕모(西王母)가 지배하는 산이다.
즉 곤륜산은 천상에 있는 황제의 하계의 도읍지이기도 하고 서왕모가 직접 살고있는 땅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곤륜산이 아무나 갈 수 있는 평범한 산이 아님은 물론이다. 곤륜산은 사방이 800리이고 높이가 만 길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홉 개의 성을 층층이 쌓아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이 높디높은 곤륜산의 주위에는 약수(弱水)라는 강이 흐르고 있는데 이 강은 가벼운 새털조차도 가라앉을 정도여서 그 누구도 쉽게 건널 수 없었다. 그뿐인가? 약수의 바깥은 다시 불꽃이 이글거리는 염화산(炎火山)이라는 산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염화산의 불길에는 무엇이든 닿기만 해도 타버렸다. 신기한 것은 이 모진 불길 속에 무게가 천근이나 나가는 큰 쥐가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 쥐로부터 화완포(火浣布)라는 희한한 옷감을 얻었다. 이 쥐는 온몸이 붉고 명주실 같이 가늘고 긴 털이 나있는데 불 밖으로 나올 때 물을 뿌리면 곧 죽었다 한다. 사람들은 그 쥐의 털로 옷감을 짜서 옷을 해입었다. 그런데 그 옷은 더러워질 때 불에 태우면 깨끗하게 빨아졌다 한다.
염화산과 약수라는 장애물을 통과하여 곤륜산 안으로 들어가면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개명수(開明獸)라는 무시무시한 문지기이다. 개명수는 몸체는 호랑이 같이 생겼는데 사람의 얼굴을 한 머리가 아홉 개나 달려있는 괴수이다. 이 괴수가 곤륜산 정상에서 동쪽을 향해 버티고 서서 출입자를 감시하고 있었다. 개명수의 허락을 받아 들어갔다 치고 이제 곤륜산의 내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곤륜산은 우선 아홉 방향마다 옥난간을 두른 우물과 문이 있고 그 안쪽에 다섯 개의 성과 열두 개의 누각이 있었다. 이 장엄한 건물들은 바로 대신 황제의 궁궐이었다.
대신이 천상에서 내려올 때 묵는 이 궁궐의 관리자는 육오(陸吾)라는 신이었다. 이 신은 사람의 얼굴을 하였으나 호랑이의 몸에 아홉 개의 꼬리가 있는 괴이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본래 천상의 아홉 구역을 다스렸던 신으로 곤륜산에서는 궁궐과 더불어 황제의 정원도 관리하였다. 그리고 붉은 봉황새 한 마리가 그를 도와 궁궐의 온갖 물건과 황제의 의복을 관리하였다. 곤륜산에는 그러나 황제만이 살았던 것은 아니다. 황제처럼 천상과 곤륜산을 왕래하는 신도 있었고 속세와 곤륜산을 왕래하는 신도 있었으며 아주 곤륜산에 자리잡고 사는 신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궁궐이 아니라 여덟 방향의 바위굴에 살았다. 어쨌든 곤륜산은 신들의 하계시 거점이었던 것이다.
신성한 공간인 곤륜산에 존재하는 사물들 역시 범상치 않았다. 그곳에는 목화(木禾)라고 하는 길이가 다섯 길, 크기가 다섯 아름이나 되는 거대한 벼가 자랐다. 아마 이 벼로 인해 곤륜산에서는 흉년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주수(珠樹) 옥수(玉樹) 낭간수(琅王干樹) 벽수(碧樹) 등 옥을 열매로 맺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특히 황제는 낭간수에서 열리는 옥을 가장 아껴서 그 곁의 복상수(服常樹)라는 나무에 이주(離朱)라는 눈 밝은 신하를 상주시켜 누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감시하게 하였다. 이주는 머리가 셋이어서 교대로 자고 일어나 낭간수를 잘 지켜냈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와 흡사한 점이 있다. 곤륜산에는 또한 사람을 영원히 죽지 않게 하는 열매를 맺는 불사수(不死樹)라는 나무도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사당목(沙棠木)이라는 나무는 열매를 먹으면 물에 빠져도 몸이 둥둥 떴다 한다.
곤륜산은 사실 하나의 산봉우리가 아니라 부근의 여러 산을 한데 모아 부르는 이름이다. 곤륜산의 일부 지역인 옥산(玉山)은 글자 그대로 옥이 많이 나는 산으로 서왕모의 거처가 있는 곳이었다. 서왕모 역시 황제처럼 훌륭한 궁궐에 살았다. 궁궐 옆에는 요지(瑤池)라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는데 서왕모는 이곳에서 신들을 위한 잔치를 자주 베풀었다.
그리고 삼천년 만에 꽃을 피우고 다시 삼천년 만에 열매를 맺는 반도(蟠桃) 복숭아 밭도 서왕모의 소유였다. 역시 곤륜산의 일부 지역인 괴강산(槐江山)이라는 곳에는 황제의 꽃밭이자 옥이 지천으로 굴러다닌다는 현포(玄圃)가 있었다. 이곳에서 맑기 그지 없는 요수(瑤水)가 흘러나와 옥산의 요지로 흘러들었다. 이 지역을 관리하는 신은 이름을 영소(英招)라고 하는데 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호랑이 무늬에 새의 날개를 한 기괴한 모습으로 사방을 돌아다녔다.
곤륜산과 같은 신들의 낙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남쪽에 있는 흑수(黑水)라는 강 근처에는 도광야(都廣野)라는 들이 있는데 이곳은 농업을 일으켰던 후직(后稷)이 묻힌 곳이었다. 이 영웅의 신비한 위력 때문이었는지 이곳에는 특별히 맛이 좋은 콩 벼 기장 등의 품종이 산출되었고 온갖 곡식이 절로 자랐다. 그리고 기후가 온화하여 겨울과 여름을 가리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며 풀이 사철 내내 시들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영수(靈壽)라고 하는 신기한 나무도 자랐는데 그 꽃과 열매를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이곳에서는 짐승들도 싸우는 일 없이 평화롭게 어울렸다. 그러자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난새와 봉황새가 날아와 제멋에 겨워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북쪽 바다 바깥의 평구(平丘)와 동쪽 바다 바깥의 차구(嵯丘)라는 곳도 낙원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온갖 과일이 생산되며 아무리 베어내도 고기가 줄지 않는다는 시육(視肉)이라는 소가 있어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남쪽의 먼 변방에 있는 질민국( □民國)이라는 나라는 순(舜) 임금의 후손이 세운 나라인데 그곳 사람들은 길쌈도 않고 베를 짜지 않아도 옷을 해 입을 수 있었으며 파종도 않고 추수를 하지 않고도 밥을 먹었다. 이곳에도 난새와 봉황새가 날아와 제멋에 겨워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서쪽 바다 바깥의 제요야(諸夭野)라는 들, 서쪽 먼 변방의 옥국(沃國)이라는 나라도 난새와 봉황새가 노니는 평화로운 곳인데 이들 지역의 사람들은 봉황의 알을 먹고 단 이슬을 마시고 살며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모든 일들이 절로 이루어졌다 한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신화에는 다양한 낙원들이 등장하지만 곤륜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곤륜산은 특정한 공간을 지니지 않은 신화적 산임에도 불구하고 고대 중국에서는 이 대표적 낙원이 서쪽 어딘가에 있다고 믿어졌다. 서방 낙원에 대한 이러한 열망은 후세의 한무제(漢武帝) 때에 장건(張騫)의 서역 탐색을 자극하여 비단길의 개척을 암암리에 조장하였다. 불교가 전입된 이후로는 서방 정토(淨土)의 설법과 결합하여 중국인들의 서방 낙원에 대한 관념이 더욱 강화되었고 마침내 '서유기(西遊記)'와 같은 환상문학의 걸작을 낳게 되었다.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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