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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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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23일이었습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백담사에 칩거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전 전대통령이 지인과 불교신도 등을 초청해 은둔 1주년 법회를 연다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물론 보도진은 사절이었지만 가만히 있을 언론사가 있겠습니까. 각 사에서 정치부 기자를 백담사로 보냈습니다. 모두 신도 틈에 끼어 들어가려고 변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무리가 많다보니 꼬리가 잡혔습니다. 백담사 바로 앞에서 제지당했죠. 그냥 돌아갈수는 없는 법, 주최측과의 실랑이 끝에 대표 딱 1명만 출입이 허용됐습니다. 절안에 들어간 기자는 느긋했지만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기자들은 발을 동동 구를수 밖에 없었죠.

항의 끝에 나머지 기자들도 경내로 들어갔지만 법회가 끝났을 때는 마감시간이 임박한 때였습니다. 신문제작의 생명은 마감시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자들은 취재한 내용을 들고 뛰기 시작했습닏. 백담사에서 용대리까지 약 20리 길을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입에 단내를 머금고 본사에 전화를 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바다같이 넓은 지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약 1시간을 달려온 기자는 이후 전화통을 붙잡고 1시간 이상 기사를 '불러야'했습니다. 당시 취재에 참여했던 한 선배기자의 회고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요란한 관심 속에 백담사는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삽질이 시작됐습니다. 길이 포장되고 다리가 놓이는가 하면, 새건물이 들어 섰습니다. 이제는 상당히 큰 절이 됐습니다. 부처의 세계가 위풍당당해진 것은 좋지만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산의 기세를 해치지 않았던 옛날의 고즈넉한 백담사를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담사 뿐만이 아닙니다. 사찰의 중층불사가 한창입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 절이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보수하고, 늘어나는 승려와 신도를 맞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옛 정취를 무너뜨리고, 자연과 조화하지 못하는 공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마음 속에 그리고 있다가 수년 뒤에 찾아가 보면 화들짝 놀랄 정도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의 목표는 자연에 녹아있는 절집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찾게 된다면 절대 남한테 알리지 않고 혼자만의 보물로 간직하렵니다.

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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