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의 초청으로 세모에 난생 처음 적도지역 인근에 있는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했다. 페어웨이 양쪽은 이름 모를 넝쿨 식물들이 치렁치렁하게 걸쳐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서 있어 정글 그 자체였다.그런데다 1번홀의 티잉그라운드 앞에는 큰 강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때 마침 우기를 맞은 강에는 누런 강물이 넘실댔다. 평일의 정오에 가까운 시간대인데다가 날씨마저 무더운 탓인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다른 골퍼들은 보이지 않았다.
블랙 티에서 티업한 후 날린 첫 티샷은 약간 오른쪽으로 휘어졌다. 캐디가 있는 쪽을 보았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염려하는 것처럼 아예 숲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레드티에서 티샷을 하는 일행들의 샷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마지막 한 분이 티샷한 볼이 떼구르르 구르면서 왼쪽 숲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숲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쏜살같이 볼을 쫓아갔다. 볼이 들어간 쪽에 숨어있던 사람만이 아니라 건너편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우르르 그곳으로 뛰쳐나갔다. 그날은 18홀 내내 그런 상황에서 골프를 했다.
전반 나인홀을 마치고 후반 나인홀에 들어서면서 잠시 나의 골프를 뒤돌아보니 드라이버샷은 아주 잘 했으나 세컨드샷이나 퍼팅은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볼 줍는 사람들에게 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티샷을 할 때는 잔뜩 긴장했다가 세컨드샷을 할 무렵에는 지나치게 이완돼 골프를 하는 동안 정신적으로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골프를 한 것이 아니라 볼 줍는 사람들과 싸움을 했던 셈이었다. 결국 나의 골프는 평소와 달리 70대를 넘어갔다.
숙소에 돌아와 전혀 예기치 못한 그날의 골프를 되돌아 보았다. 잘못 친 볼을 줍기 위해 맨발로 숲에 숨어있거나 누런 흙탕물이 거칠게 흘러가는 개울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 연못에서 목만 겨우 내놓은 채 천천히 옮겨 다니는 사람들.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친 볼이 자기 쪽으로 날아 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볼을 아홉 개나 가지고 갔으면서 한 개도 잃어버리지 않으려 안달을 하며 잔뜩 긴장했던 것이다.
평소 스스로에게 처해있는 상황이 변해도 동요함이 없이 자중하면서 힘을 길러 미래를 맞이하자는 뜻이 담겨있다는 '처변불경 장경자강(處變不驚壯敬自强)'이란 글귀를 자주 말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 골프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볼을 줍는 아이들이 들이 닥치자 당황하며 무너지는 나의 골프를 보고 나서 아직도 내 생각이 사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하며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호사 sodongk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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