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막 시작된 3일 오후3시 경기 용인의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사업장 비메모리 생산 2라인. 출입이 통제돼 창문으로만 들어다 본 내부는 여느 반도체 공장 모습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깔끔하고 정돈된 시설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방진복을 뒤집어 쓴 직원들 모습,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 위에 심는 기계들의 숨가쁜 움직임 등.그러나 이곳에는 눈으론 볼 수 없는 '반도체의 미래'가 숨어있다. 웨이퍼에 찍힌 'ADSL용 SoC'가 바로 반도체 산업의 미래로 통하는 비밀의 열쇠. 이 칩은 이전 디지털변복조(MDT) IC, 컨트롤러 IC, 아날로그신호 전송 및 수신(AFE) IC 등 ADSL시스템에 필수적인 핵심 칩셋 3종에 나눠있던 각각의 기능을 하나의 칩으로 집적한 획기적 제품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은 이처럼 D램 이후의 대안으로 메모리와 시스템LSI(비메모리), 아날로그와 디지털 부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모든 기능을 하나의 칩에 담아, 반도체가 곧 시스템이 되는 시스템온칩(SoC·System on Chip)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KAIST 유회준 반도체설계자산연구소(SIPAC)소장은 "이젠 SoC사업은 '할 수도 있다'는 선택의 단계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생존의 단계"라며 "SoC는 반도체 산업의 연장선이지만 전자공학, 컴퓨팅, 통신 등이 통합된 전자산업 전체로 받아들여야 하며 성공하지못한 기업은 향후 반도체 시장에서 도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IT산업의 빅뱅 가져올 SoC
SoC는 반도체 산업은 물론 세계 정보기술(IT)산업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핵폭풍으로 인식되고 있다. SoC는 기존 반도체 기술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현재 거론되는 각종 IT기술의 총체이기 때문. 최첨단 기술인 나노기술은 물론 초정밀가공기계기술(MEMS), 300㎜웨이퍼 기술 등이 모두 SoC에 통합된다. 또 통신과 컴퓨팅의 융화를 한층 가속화해 일상생활과 사무환경의 거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oC가 IT의 총체인 만큼 산업적인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SoC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공정기술은 물론 전자공학, 기계, 화학, 물리 등 다양한 과학기술과 산업현장의 경험이 요구된다. 따라서 SoC의 발전은 통신과 컴퓨팅의 동반 발전을 유도할 수밖에 없고 막대한 자본도 필요로 한다.
이러다 보니 시장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일부 전문가들은 SoC시장 규모를 2005년 2,000억달러, 2008년 4,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비록 추정치이지만 지난 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1,600억달러이고 이중 D램 시장이 154억달러인 점과 비교하면 시장 규모가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주공산인 SoC 산업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SoC 시장을 놓고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선두 그룹은 이를 통해 시장 격차를 더욱 벌려놓겠다는 전략이고 후발 업체들은 선두에 합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일부 앞선 기업들이 10여가지 칩 기능을 한 칩에 집약한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SoC가 시스템 구성에 필요한 모든 핵심기능을 하나의 칩 위에 탑재, 초소형·고집적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은 아직 개화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중 인텔이 SoC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인텔은 무선통신시장을 겨냥해 마이크로프로세서, 모뎀칩, 디지털신호처리칩(DSP), 플래시메모리 등을 통합한 모바일 기기용 SoC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칩은 인텔의 지배력을 PC시장에서 무선통신시장으로 옮기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SoC 사업을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자 전략으로 삼고 있다.
삼성전자는 SoC를 차세대 전략 제품군중 하나로 선정하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업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01년 기흥 사업장에 SoC 사업 강화를 위해 SoC 전담 연구소를 설립한 삼성전자는 최근 연구인력을 200여명에서 1,000여명으로 대폭 확대하고 개발 방향을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를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SoC 제품군중에서도 특히 네트워크와 모바일 기기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네트워크용 제품군으로는 ADSL·무선랜·디지털TV용 SoC칩을 개발·양산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7월 미 마이크로소프트(MS)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자사의 SoC 제품에 MS의 모바일 제품용 운영체제(OS)를 지원키로 결정하는 등 차세대 모바일 제품용 SoC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비메모리 사업부인 시스템IC컴퍼니를 중심으로 SoC 표준제품(ASSP)과 파운드리 공정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말 통합한 동부아남반도체는 SoC산업에서 필수적인 나노급 제조공정기술 개발을 통해 SoC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SoC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하이닉스 시스템IC컴퍼니 허 염 대표는 "무엇보다 SoC 개발에 필수적인 IP(지적재산권) 즉, 설계능력이 태부족이고 D램 위주의 공정기술을 SoC공정으로 확대하기 위한 정보시스템 구축이 미미하다"며 "그러나 D램에서 보여줬던 국내 기업들의 저력을 고려하면 SoC는 국내 반도체업계에도 절호의 기회이자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 시스템온칩이란
SoC는 마이크로프로세서, 메모리반도체,디지털신호처리칩(DSP), 마이크로컨트롤러(MCU) 등 개별 반도체를 하나의 칩에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회로판(PCB·Printed Circuit Board) 위에서 여러 개의 반도체 칩으로 구현되던 시스템이 한 개의 칩으로 집적하는 기술이다. 연산기능과 데이터의 저장 및 기억, 아날로그와 디지털 신호의 변화 등을 하나의 칩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SoC가 이처럼 개별 반도체를 통합하기 때문에 많게는 10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SoC 제품들도 개발되고 있다. 1971년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4004'가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첨단 2㎓급 '팬티엄4'가 2억개를 집적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칩 하나에 10억개를 집약하는 SoC기술은 놀랍다고 할 수 있다.
SoC 기술의 발달은 제품의 소형화, 오작동 감소, 전력 소모 감소 등 정보기기의 성능 개선과 원가 절감에 획기적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회로판에서 여러 칩들이 차지하던 공간을 줄여 제품의 크기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여러 칩이 별도로 장착될 때 발생하는 노이즈(칩간 충돌 현상) 문제도 해결된다.
또한 칩이 다수일 경우 회로판 위에서 서로 떨어져 있는 칩들 간의 정보 교환을 위해 소요되는 전기 사용량을 SoC 기술을 통해 줄일 수 있다. 특히 반도체 구입단가 및 조립 원가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SoC는 어느 분야에 적용되느냐에 따라 PC온칩, 모바일용 온칩, 디지털TV온칩, 개인정보단말기(PDA)온칩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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