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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뻗은 눈길엔 나 혼자뿐 뽀드득뽀드득 "트레킹 천국" 백담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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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뻗은 눈길엔 나 혼자뿐 뽀드득뽀드득 "트레킹 천국" 백담계곡

입력
200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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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헤쳐 주먹만한 돌을 집어 들었다. 계곡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돌이 떨어지는 소리도, 떨어진 곳의 흔적도 전혀 없다. 하얀 세상은 그렇게 나그네의 객쩍은 장난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설악산 백담사(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2리)로 오르는 길은 흔히 백담계곡이라고 불린다. 입구에서 절까지 7.5㎞. 걸어서 오르는 데 2시간, 내려오는데 1시간40분 정도가 걸린다. 작은 버스가 다닐 정도로 길이 넓고 편하다. 간단한 트레킹 코스로 제격이다.

여행 시즌, 특히 가을 단풍철이면 이 길은 시장통이 된다. 전국에서 모여 든 관광버스가 행락객을 쏟아놓고 그 행락객은 긴 줄을 이루며 산으로 향한다. 그래서 이 계곡을 진정 좋아하는 이들은 행락철을 피한다. 계곡의 운치를 마음껏 즐기며 사색 속에서 걸을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이다. 아무도 없다. 세상은 온통 흰색이다.

입구의 큰 주차장은 동절기를 맞아 폐쇄됐다. 승용차 수백대를 세울 수 있는 너른 공간이 텅 비어있다. 대신 무릎까지 빠질 정도의 눈이 쌓여있다. 마치 눈을 담아놓은 큰 수영장 같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 위에서 구른다.

길 위의 눈은 신통하게도 잘 다져져 있다. 사람들의 발길 탓이기도 하지만 신도들을 태운 작은 셔틀버스가 절까지 왕복하기 때문이다. 미끄러운 눈이 아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는 습기가 없는 눈이다. 그 소리에 박자를 맞추며 걸으면 힘이 덜 든다.

백담계곡 트레킹 코스는 입구에서부터 3.5㎞ 정도의 중간지점과 그 윗 부분으로 양분된다. 겨울이 아닌 때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중간지점까지 왕복 운행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객은 그 절반 부분을 버스를 타고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백담계곡 중에서 가장 계곡미가 빼어난 곳이 바로 버스가 운행하는 이 부분이다. 웅장한 계곡의 아름다움은 물론 빽빽한 숲이 내뿜는 건강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며 좌우로 펼쳐진 눈 덮인 계곡에 취하다 보면 순식간에 오른다.

중간 지점의 버스 정류장은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대기중인 승객들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큰 천막은 완전히 눈에 덮여있다. 화장실로 가는 곳만이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길이 났다. 벤치의 눈을 털어내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버스 정류장부터는 길이 조금 가팔라진다. 오르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리막도 있다.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은 곳은 제법 미끄럽다. 나들이에 나선 한 가족이 앞에서 걷고 있다. 내리막에서 아이들이 털썩 주저 앉더니 엉덩이로 썰매를 탄다. 처음에는 말리려 했던 부모도 함께 주저 앉아 미끄러진다.

산허리를 길게 감도는 마지막 오르막을 지나면 백담사의 일주문이 보인다. 얼마전 새로 세운 것이다. 일주문 바닥을 붉은 색 아스팔트로 깔아 볼썽사나웠는데 다행히 지금은 눈에 덮여있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 수심교(修心矯)를 건너면 백담사다.

수심교를 지나며 절 앞의 계곡에 눈길을 준다. 너른 돌밭의 모습이 이상하다. 하얀 고슴도치의 가죽 같다. 사람들이 쌓아놓은 크고 작은 돌탑들이 눈에 덮여 있기 때문이다. 키가 큰 것은 바람에 눈을 날려보내고 삐죽 드러나 있다. 기이한 조형미를 풍긴다. 깊은 산에서 만나는 속세의 염원이다.

고개를 든다. 계곡은 물론 물길을 에두르는 크고 작은 봉우리까지 모두 하얗다. 하얀 곳에서 세상을 생각해본다. 세상도 이렇게 하얗다면 새로 그림을 그리는 일도 어렵지 않을텐데….

/인제=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 백담사

과거 백담사는 첩첩산중의 절이었다. 절에 닿으려면 거친 계곡물을 몇 차례씩 건너며 한참을 올라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과 가장 가까운 절 중의 하나가 됐다. 절로 오르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됐고, 작은 암자 규모였던 절집은 대찰의 위용을 갖추었다.

백담사의 원래 이름은 한계사였다.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 자장율사가 세웠다. 십여차례 소실됐다가 재건되는 등 곡절을 많이 겪었다. 18세기 중엽 물의 힘으로 불을 막기 위해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물웅덩이가 100개 있다는 의미의 백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백담사는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시대 승려이자 시인인 만해(卍海 또는 萬海) 한용운(1879∼1944)과 일해(日海) 전두환 전대통령이다. 만해는 이 절에서 승려 생활을 시작했고 줄곧 이 곳에서 수도했다. '조선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 그의 정신을 담은 걸작을 탈고한 곳도 이 절이다. 그래서 그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절 마당에는 그의 흉상과 시비(나룻배와 행인)가 세워져 있다. 그의 유품을 모아놓은 만해기념관과 그의 가르침을 전하는 만해교육관 등도 있다. 백담사의 원래 주인은 만해인 셈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1988년 11월 23일부터 2년여 동안 이 곳에서 칩거했다. 법당 앞의 오른쪽 요사채의 작은 방에 들었다. 그래서 그의 흔적도 많다. 우선 법당인 극락보전의 편액이 전 전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이다. 그가 살았던 작은 방은 '제12대 전두환대통령이 기거했던 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당시의 생활소품들을 모아놓았다. 비록 소박한 행장이지만 백담사가 갑자기 유명해지는 계기가 됐고, 지금의 규모로 커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됐다.

절 전체를 호령하는 극락보전의 편액과 법당을 외면하고 바깥을 응시하는 만해의 흉상을 함께 보고 있으면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왜 이 절은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간 두 사람을 모두 품었을까?' 누구나 세속적 잣대로 생각해본다. 아서라.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가는길

6번 국도를 타고 양평까지 간다. 양평 용두리를 지나면 44번 국도로 길이 바뀐다. 홍천-인제-원통을 지나면 한계리 민예단지 휴게소 삼거리. 왼쪽 미시령 방면 46번국도로 방향을 잡고 약 13㎞ 진행하면 백담사 입구인 외가평 3거리이다. 국도는 제법 제설작업이 되어 있지만 외가평 3거리부터 매표소에 이르는 약 1㎞ 구간은 완전히 빙판길이다.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미시령 경유 속초행 직행버스나 진부령 경유 간성행 직행버스를 타고 외가평 3거리에서 내리면 된다. 설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백담분소 (033)462-2554

쉴곳

백담사 입구인 용대2리에는 여관이 별로 없다. 대부분 민박이다. 성수기에는 약 250실 정도가 운영되는데 겨울 비수기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 옥수골관광농원(033-462-7172), 백담 황태구이집(462-5870) 등에서 민박을 친다. 인근 원통읍에 여관이 비교적 많다. 미시령을 넘어 속초시에 이르면 설악한화콘도, 대명콘도 등 대형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먹거리

이 지역 겨울 먹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황태이다. 백담사가 있는 인제군 북면은 국내에서 가장 너른 황태덕장 지역이기도 하다. 지금이 바로 황태를 말리는 시기이다. 백담사 입구에서 진부령에 이르는 길 양쪽으로 덕장이 펼쳐져 있다. 먹는 맛도 좋지만 보는 맛도 그럴 듯하다. 용대리 지역의 대부분 식당에서 황태구이와 황태국을 내놓는다. 진부령식당(033-462-1877)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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