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죄고, 건전한 대기업은 육성하겠다'는 새 정부의 재벌 정책 방향이 재계에서는 못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재계를 대변해온 손병두(孫炳斗)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 최근 "대기업과 재벌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새 정부의 재벌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선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재계에서 큰 세력을 가진 독점적 자본가나 기업가의 무리(재벌)' '자본금이나 종업원 수 또는 그 밖의 시설 등이 대규모인 기업(대기업)' 등 사전적 정의의 차이를 모르고 한 발언은 물론 아닐 것이다.
"지난 5년간 구조조정을 통해 과거 나쁜 의미로 사용됐던 재벌은 없어졌다"는 발언에서 볼 수 있듯 재계는 아마도 재벌에도 '나쁜 재벌'이 있고 '좋은 재벌'이 있음을 주장하고 싶은 듯 하다. '좋은 재벌'이 대기업과 하나의 몸체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재벌만 따로 떼내 규제하겠다는 새 정부의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재벌은 정부 주도의 경제 발전 속에서 탄생한 우리나라의 특수한 산물이라는 점, 재벌 체제가 존속하는 한 좋은 재벌이든 나쁜 재벌이든 폐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 경제학자는 "규모의 경제(대기업)는 생산성과 기술력 향상을 낳을 수 있지만, 무리의 경제(재벌)는 필연적으로 독과점과 불공정 경쟁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표현했다.
재벌과 대기업이 불완전하게 하나의 몸체를 형성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두 얼굴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나의 몸체를 억지로 분리해 대기업으로서의 경쟁력까지 저해해서는 안되겠지만, 언제라도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또 다른 얼굴(재벌의 행태)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견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황제식 경영, 선단식 경영등 재벌적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재벌정책도 사라질 수 없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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