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0일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행정수도 이전문제와 관련해 충청권에 서울대 제2캠퍼스를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어느 일간지의 1면 머릿기사로 대서특필 되었고 다른 신문들도 일제히 이 기사를 인용, 보도하였다.대단히 죄송하지만, 나는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일개 대학 총장의 발언이 일간지의 1면 머릿기사를 장식하는 것도 우습지만, 정 총장이 갖고 있는 '서울대 특권주의'는 더욱 우습다. 서울대 총장이 아닌 다른 국립대 총장이 그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미쳤다'고 욕먹기 십상일 것이고, 신문들도 아예 보도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입장에서 뉴스 가치만 놓고 보자면 서울대 총장은 국무총리보다 더 막강한 자리라는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1조원 정도의 자금이 소요될 서울대 제2캠퍼스 신설은 감히 서울대 총장이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자격으로 보자면 정부가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교육개혁에 미칠 가공할 악영향을 생각한다면 정부조차 꿈도 꾸어선 안될 일이다.
정 총장은 제2캠퍼스 신설의 이유로 관악캠퍼스의 과밀 상태를 들고 있다. 그것 참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지난 십수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대의 정원 축소를 주장해 왔다. 정원을 아무리 줄여도 관악캠퍼스의 한 구석도 빼앗지는 않을 것이니 정원을 대폭 줄여 원 없이 캠퍼스를 넓게 써보라는 애정어린 배려를 해주었다.
그런데 서울대는 그런 배려를 무시한 채 정원을 계속 늘려왔고 이제 와선 너무 좁으니까 제2캠퍼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울대를 세계적인 일류 대학으로 만들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명분까지 내세운다. 이 또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짐을 나누어 지겠다고 나서고 있다. 왜 서울대는 봉사를 독점하려는 것인가?
그러지 말자. 서울대는 그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너무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이젠 짐을 나누어 질 때다. 그리고 서울대가 혼자 그 고생을 하는 바람에 학벌주의라고 하는 망국병까지 생겼다.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교육개혁을 이루기 위한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바로 '대학별 특성화'다. 정부 예산은 그 방향으로 쓰여져야 한다.
전공 분야별로 수십개의 명문 대학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지역의 균형 발전을 이루고, 바람직한 의미의 경쟁을 고취시켜 '공부하는 대학'을 만드는 유일한 방안이다. 권력 엘리트의 특권주의만 문제인가. 그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특권주의는 우리가 타파해야 할 개혁대상 제1호다. 서울대는 '서울대'라는 간판 하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한 발상부터 버리고 현 정원을 반으로 줄여 관악캠퍼스를 원 없이 넓게 쓰기 바란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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