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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급할수록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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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급할수록 돌아가라

입력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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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창 틈새로 들어왔다가 나가려는 벌을 관찰해보면 계속 유리창에 부딪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들어왔던 틈을 찾지 못하고 곧바로 밖을 향해 날아가려다가 계속 실패하는 것이다. 힘이 거의 빠져야, 유리에 붙어 다니다가 잘 하면 틈새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입구가 좁은 어망 안에 갇힌 물고기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빠져 나오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이러한 동물의 행동은 인지능력 부족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므로 무조건 바깥에 가깝게 가려다가 결국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를 비교하여 그 차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사결정론에서는 '차이 감소법'이라고 한다. 다른 종보다는 우수한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도 기본적으로 동물의 하나이므로, 훈련을 받지 않는 한 의사결정을 할 때 차이 감소 방식을 흔히 쓰게 된다.

간단한 문제의 경우에는 이러한 방식을 써도 해결책을 찾는데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복잡한 문제의 경우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간의 차이를 무조건 줄이려고 해서 목표를 달성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목표 쪽으로 급하게 가려다가 문제가 꼬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정권에서 일어난 경제 정책들을 보더라도 조급한 판단에 의해서 문제를 꼬이게 만든 경우가 있다.

우선 현 경제부총리도 잘못을 인정한 빅딜 정책이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사업 중 일부 부실화 한 것을 서로 맞바꾸어 부실기업 수를 줄여보자는 정책이다. 항공, 철도차량, 자동차, 반도체 등에서 시도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반도체처럼 여전히 부실기업인 채로 남아 있거나, 철도차량처럼 인위적 독점기업이 생겨나 가격이 오르고 이로 인해 정부와 국민에게 부담이 되어 버렸다. 주택가격 상승 문제도 마찬가지다. 외환 위기 이후 건설 경기를 활성화해 경제를 회복시켜 보자는 정책들이 다시 급격한 부동산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 전반적 물가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 목표에 곧바로 가까이 가기 보다 시장경제를 통해 기업합병이 일어나게 하거나 경기가 서서히 상승하게 두어도 될 것을 공연히 정책을 써서 부작용을 일으킨 사례라고 하겠다.

통일문제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무조건 만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통일에 대비해 재원을 마련하고 제도를 준비하는 우회적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바둑에서도 사석(捨石)작전이라고 해서 자신의 돌을 일부러 죽임으로써 효과적으로 자신의 집을 짓는 방법이 있다. 우회적 전략이 효과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런데 조급한 판단들이 이번 정권에서만 일어난 것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일시적인 문제로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걱정되는 점은 조급한 판단의 근본적 원인이 사실 우리 나라 조직문화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기를 올리기 위해 성과를 빠르게 달성해 보겠다는 리더의 생각, 리더의 의견에 반대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조직문화다.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는 분위기, 그리고 조직의 잘못을 평가하고 기록하여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과정의 부재 등도 우리의 잘못된 조직문화 특성들이다. 이 모든 특성들은 복잡하게 작동되는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경제와 관련된 많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성장률을 7%로 달성하겠다는 것부터, 정보통신산업 육성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쉽게 달성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다행히 주변의 걱정을 아는지 대통령 당선자는 과욕을 자제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조직문화의 특성상 언제 과욕이 불거져 나올지 모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의 속담은 이런 분위기에서 적절한 교훈이다.

홍 기 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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