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라장에서 자기가 신청한 김승진의 '스잔'을 듣겠다고, 박혜성의 '경아' 지지파 불량 소녀들에게 어필하던 너. 사랑을 증명한다고 오공주파 대표 공효진 앞에서 감히 눈 똑바로 뜨고 휴지통의 음식 찌꺼기를 먹어 치우던 너. 문덕고교 캡짱 중필이(유승범)에게 "난 네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꿈이 뭐야?" "운동화 샀구나, 나이스네" 등등 돗수 높은 안경을 치켜 올리며 은근 슬쩍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던 너…나 너에게 반했어. 언젠가 네가 라이터를 사라고 눈 속에서 뒹굴 때 어찌나 불편하던지 빨리 변신술을 쓰기를 기다려왔는데, 넌 반년도 안 지나 완벽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주었지. CD 한 장으로 가려지는 작은 얼굴, 동그랗고 큰 눈, 인형처럼 작은 입, 한 손으로도 번쩍 들릴 것 같은 작은 몸인데도, 너는 영화 '품행제로' 안에서 그 누구보다도 카리스마가 넘치더구나. 기타 교습소에서 한쪽 다리를 나무에 척 올리고 (그때 넌 스커트를 입었고 중필이는 건너 편에 앉아 있었건만, 이건 분명한 고혹적이고도 섹스 어필한 장면이야) 로망스를 연주 한다고 기타를 튕기던 너는 분명 상대방을 압도하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어.
여리고 소심한 신비의 소녀가 아니라 자기의 앞가림 정도는 충분히 하는 똑 부러진 여고생으로 돌아간 거지. '품행제로'는 80년대를 중고생으로 살았던 386세대의 기억을 들추는 영화잖아. 그때는 딱히 비행이라 해봤자 컴컴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셔 보는 거, 눈치 봐가며 빵집에서 미팅한번 하는 거, 당시 바람머리의 대명사 주병진 머리 한다고 앞머리에 살짝 핀컬 파마 하는 정도? 그나마 월요 애국조회 때 느닷없이 내린 비로 파마한 애들 몽땅 잡혀 들어갔던 적도 있었지. 레이프 가렛 공연에 갔다가 사진에 찍혀서 정학 일보 직전까지 갔던 중학교 때의 짝이나 밤마다 간첩처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음악프로를 듣던 친구들이 생각났어.
'품행제로' 민희는 무표정으로 상품의 이미지를 전달하던 TV속의 소녀나 대사없이 가녀린 몸으로 두시간을 허둥지둥하던 성냥팔이 소녀보다 훨씬 생동감 있었어.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면서 롤라장에도 출몰하는 팔방미인형, DJ가 상주하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는 전형적인 모범생인 너는 욕쟁이 여고생들에게 일보도 밀리지 않는 당당함으로 중필이와 첫 키스도 먼저 따내는 당돌함도 가지고 있지.
첫사랑은 첫사랑일 뿐 성인이 되어서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마무리까지, 이번에 정말 딱이었던 거 알지? 따뜻한 영화 속 명랑 쾌활한 소녀,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를 완벽하게 소화했으니 이제 다음에는 어떤 변신을 시도할지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해지는 걸∼.
/영화칼럼니스트 amsaj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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