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내 보수파와 개혁파의 노선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수도권 출신 초·재선 의원 10명이 5일 '국민 속으로'를 결성, 개혁세력 결집에 나선 데 대해 보수파 중진들이 6일 '분파적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양측의 정면 대결이 본격화했다. 개혁파는 당 체질 개선과 함께 그 동안 주류를 형성했던 민정계 중진들에 대한 인적 청산까지 요구하고 있어 양측의 화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갈등이 당의 분열과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정황이다.▶ 쟁점과 배경
개혁파는 당의 인적 청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와 같은 보수파 일색의 지도부와 역학 구도가 유지될 경우 대부분 수도권 출신인 자신들은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다. 이회창(李會昌) 전 대통령후보가 완패한 수도권의 16대 대선 결과에서 이런 위기감이 비롯했다. 제도적 개혁도 좋지만 결국 사람이 바뀌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게 이들의 논리다.
'국민 속으로'의 김부겸(金富謙) 의원은 "한나라당에 덧씌워진 수구적 이미지를 탈피하지 않고는 당의 존립을 장담할 수 없다"며 "이 전 후보를 오도한 사람들은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층을 대거 참여시켜 대의원 구조를 바꾸자는 개혁파의 요구도 지도부 내 보수파의 입지를 줄이고 자신들이 당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포석이다.
그러나 보수파는 정치적 이해부터가 전혀 다르다. 영남권을 본거지로 하고 있는 이들은 당이 뭉쳐서 반(反) 민주당 색채를 뚜렷이 하면 다음 총선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확인된 영남에서의 한나라당 압승과 이에 따른 원내 제1당 고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적 쇄신 등 당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는 개혁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순봉(河舜鳳) 최고위원은 "우리 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안정 속의 개혁을 원한다"며 "중요한 것은 지지자의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젊은층 등의 새로운 지지를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태(朴熺太) 최고위원도 "민심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것인데 수도권 의원들이 대선 결과만 보고 지나치게 초조해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물론 개혁파의 이념 성향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다. 김용갑(金容甲) 의원은 "어려운 시기에 '민주당 2중대'와 같은 개혁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전망
양측은 향후 당 개혁 방향을 포함, 대북 정책과 총리 인준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김부겸 의원은 "남북 관계에 대한 수구적 발언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 등 과거 야당의 행태에도 제동을 걸 것"이라고 말했다.
3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대표 경선이 실시될 경우 개혁파는 이부영(李富榮) 의원의 불출마 결정에 따라 김덕룡(金德龍) 의원을 민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반면 보수파의 대표 주자는 현 최고위원들의 불출마 선언으로 최병렬(崔秉烈) 강재섭(姜在涉) 의원으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의원 구조 변경 문제가 간단치 않은 데다 양측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여 도중에 파국을 맞아 경선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일부 개혁파 의원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집단탈당 후 민주당과의 정책연대를 추진하는 방안까지 거론하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수적 열세에 있는 만큼 배수진을 치고 덤벼야 그나마 성과가 나올 것이란 뜻"이라면서도 "그래도 안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연합공천까지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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