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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盧硏과 MH 노믹스

입력
2003.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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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경제학에는 파벌이 많다. 대가를 중심으로 제자들이 모여 사상과 이론을 같이하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을 이룬다. '학파(學派)'가 그것이다. A학파는 B학파와 완전히 다르다. 세상을 보는 시각에서부터 문제 해결 방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견해를 달리 한다. 유효 수요를 중요시하는 케인스 학파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통화주의인 시카고 학파는 시장을 중시한다.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경제학에 뜻을 둔 학생들은 학교를 선택할 때 교수가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그가 어떤 학파에 속하는지, 누구의 제자인지를 먼저 고려한다.경제학에 학파가 많은 이유는 모든 경제 정책은 선택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책을 시행하느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뚜렷이 구분된다. 이익 보는 집단과 손해 보는 집단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어떤 정책을 선택하느냐를 결정하는 데는 경제적 효율이 절대적 잣대는 아니다. 정치적 신념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적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제와 정치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어 경제 문제를 정치 문제와 분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감세 정책은 부시 경제 팀의 핵심 인물들이 마틴 펠드스타인 하바드대 교수의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펠드스타인 교수의 조세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우리의 경우 '서강학파'가 있다. 남덕우 김만제 이승윤씨 등을 중심으로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경제를 이끈 집단이다. 이들은 철저한 성장주의자로 재벌 우선, 수출지상주의, 선 성장 후 분배 등을 통해 압축 성장을 추진했다. 이들은 경제 성장의 기적을 창조했다는 평가와 함께 IMF 체제의 원인(遠因)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골격을 만든 것은 '중경회(中經會)'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 자문 그룹이었던 중경회는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를 내세워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지만, 학자적인 이상주의가 정부 관료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멤버 중에서 김태동(경제 수석) 윤원배(금감위 부위원장) 이진순(KDI 원장) 이선(KIET 원장) 등이 직접 정부에 참여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집단은 '노연(盧硏)'이다. 노무현과 함께 하는 연구자 그룹을 말한다. 이들의 성향은 한마디로 진보 개혁적이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한다. 이들의 스승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이들은 '변형윤 학파'에 속한다. 변형윤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대 학장을 오래 역임하는 등 서울대 상대의 정신적 지주였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군사정권 시절 해직을 당하기도 했다.

그의 제자들 가운데 분배를 중시하는 학자들이 노연의 중심이다. 변 교수의 호인 학현(學峴) 사단의 핵심 멤버들이다. 중경회 멤버 일부도 여기에 포함되나 정책 실행방안 등에 있어 생각이 같지는 않다.

노 당선자는 분배와 성장에 대해 어느 것을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며, 논리적으로 함께 가지 않으면 결국 파탄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재벌은 다르다고도 했다. 또 노 당선자는 "미국식 경제와 독일식 경제 중 개인적으로 독일식이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확실한 감을 잡기는 아직 쉽지가 않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이제 노연이 표방하는 'MH 노믹스'가 서서히 윤곽을 뚜렷이 하고 있다. 경제권력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경제와 정치는 칼로 베듯 구분되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이들이 중경회처럼 중도하차 할지, 5년간 지속할지 관심 거리다. 이들의 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구체화하고, 어떤 평가를 받을 지 두고 볼 일이다.

이 상 호 논설위원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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