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그 이후 큰 변혁을 가져올 때 정치학적으로 중대선거라 부른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선거는 평상선거다. 1987년 대통령선거는 6월 항쟁 덕으로 헌법을 고쳐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았지만 중대선거가 못됐다. 김영삼 정부를 탄생시킨 92년 대선은 중대선거의 범주에 든다. 그 정부가 정치군벌 하나회를 숙정한 것만으로도 확실한 변화였다.2002 대선은 그 자체로 보면 이미 중대선거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부의 간판이 개혁과 물갈이여서 그렇다. 나는 그 물갈이의 첫 단추로 인사정책, 언론개혁, 정당개편을 잘 꿰야 한다고 본다. 이번 대선에서 표출된 민심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하느냐가 역사적 중대선거인지 여부를 좌우할 것이다.
노 정부의 성패를 가르게 될 첫 과제는 개혁정책을 기획, 실천, 관리할 인재를 구하는 일이다. 집권당의 정치역량, 행정부의 실천능력, 청와대의 기획과 조정은 큰 틀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핵심은 인재등용의 대상범위와 방법이 함께 개혁돼야 한다는 점이다. 다면평가 인사정책도 그 대상이 선거참모나 자문교수에 국한된다면 절반의 개혁에 불과하다.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능력이 있는 자를 널리 구해서 자리를 맡기라'는 금언에도 어긋난다. 노 당선자가 고위 공직후보를 인수위의 국민참여센터를 통해 공개추천 받기로 한 구상은 참신하다. 미국의 경우 '선거참모정치'와 개방형 인재등용이 함께 혼용돼 왔다. 그러나 책임정치라는 명분 아래 핵심요직은 선거참모들이 차지한다. 우리가 미국 방식을 그대로 모방할 경우 김대중 정부의 인사실패가 되풀이될 위험성은 없을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 사람 챙기기'가 바로 그 실패의 교훈이다. 그렇게 해서 범(汎)지지기반이 와해됐고 식자층의 냉소가 만연했음을 새겨야 한다.
둘째로 노 정부로선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과제가 언론개혁이다. 국민이 선택한 '낡은 정치 청산'이라는 슬로건 속에 '낡은 언론 청산'도 포함돼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 시대의 원동력은 보수 신문을 외면한 대신 인터넷 언론에 의존한 시민문화가 아니던가. 월드컵 응원과 촛불시위, 그리고 '노사모'와 개혁국민정당이 태동한 언론환경을 정착시킬 과제가 놓여 있다. 굴곡형 언론을 먼저 고치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언론개혁 대상은 그 본령과 환경으로 나누어진다. 취재, 편집, 보도가 언론의 본령이다. 언론의 본령에서는 자율개혁이 원칙이지만 그것이 언론인의 전유물은 아니다. 언론 자유란 궁극적으로 국민의 의사표현 자유와 알 권리를 말한다. 언론인 활동과 언론사 경영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로 될 수 없다. 언론개혁은 언론계 뿐아니라 일반 시민사회가 참여한 가운데 함께 성취해 나가야 한다. 언론사 소유지분의 제한과 언론노조, 공정보도위의 법제화가 그 핵심이다. 소유지분 제한론엔 재산권과 관련한 위헌론도 일부 제기됐다. 그러나 토지소유를 무한정 허용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로 언론의 독과점도 제한돼야 한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본령적 언론개혁은 아니었지만 환경개혁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공보정책의 변화, 신문고시제의 엄정 시행, 상주 출입기자제 폐지와 브리핑제 개선, 인터넷 언론기능의 확대지원, 공동배달제 지원 등이 정부가 맡아야 할 언론 환경의 개혁이다.
세번째 시급한 과제가 정당개편으로 당내 민주화와 함께 정당간의 관계 재정립도 중요하다. 올해 민노당이 지방선거에서 8.2%, 대선에서는 그 후보가 3.9%를 얻어 제3당으로 자리잡았다. 2004년 총선에서는 원내 과반의석이 정당간 연대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 연정에 국무총리직을 맡길 경우 이념의 다양화가 국민생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는 새로운 정치가 전개될 것이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정당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김 재 홍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