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총장인 김성수(金成洙·73·대한 성공회) 주교는 70년 된 양복을 입고 있었다. 소매끝과 양복 앞섶에 가죽이 얇게 돌려져 있길래 혹시나 싶어 사연을 여쭈었더니 장가든 무렵 장인어른이 물려준 옷이라고 했다. 영국 사람들은 양복을 오래 입기 위해 잘 닳는 부위에 가죽을 대서 입는데 이 양복은 영국인 장인이 그렇게 가죽을 꿰매 붙인 뒤 30여년을 입은 것을 사위한테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검박한 생활로 아낀 돈은 무엇에 쓰는가. 그가 1999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토대로 경기 강화에 정신지체장애인 근로시설인 사회복지재단 우리마을을 만든 것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에서 성공회는 무척 특이한 교회이다. 신도수는 5만여명에 불과하지만 대학(성공회대)이 있고, 정신지체아 교육시설(성베드로 학교)이 있고, 음성나환자복지시설(성생원)이 있고, 교회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시설(나눔의 집)이 있다. 게다가 대학은 국내 최초의 NGO학과 설립, 진보 인사들의 잇따른 교수 영입, 1등보다는 더불어사는 삶을 가르치는 것으로 어느 대학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성공회 정동 주교좌성당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성직자들의 민주화 선언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에는 김 주교가 있다. 그런데도 그는 성공회대의 토대는 이재정 전 총장이 만들었고 성공회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것은 젊은 신부들이 나서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세상을 바꿔나가는 아름다운 인간 연대의 사슬이 보이는듯하다. 대학마저도 세계화의 시장 논리에 매몰되어가는 무한경쟁 속에서 인간연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의 말을 들어보았다.대담=서화숙 문화부장
―총장실로 오면서 보니 '승연관 시몬홀은 김성수 주교님의 일만기도헌금으로 마련되었'다고 동패가 붙어있더군요.
"1992년 신자 1만명이 적지만 돈을 모아 대학을 세우고 공동운영하자는 뜻에서 시작한 것인데 저도 서울 교구장 은퇴할 무렵 기부를 좀 했어요. 1만명이 함께 기도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해서 그들의 도움으로 지었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1998년 4월에 있었던 준공식에는 건물 옥상에 테이프를 매달아가면서까지 1만명이 다함께 모여서 테이프커팅을 했지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테이프커팅을 한 것은 처음이라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지요."
―98년 우리마을 건립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직접 커피를 끓여서 팔기도 하셨지요.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어요. 서울 중구 정동 주교좌 성당 앞에서 커피를 만들어 파는데 근처 관공서와 회사 사람들이 많이 왔지요. 인근의 커피 파는 아줌마들이 와서 데모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모금 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아요. 한 잔에 500원씩 팔았는데, 주교가 끓여주는 커피라 축복 받는 것이라며 1,000원은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선 거스름돈 500원을 주지 않으면 안 가는 사람도 있더군요.(웃음)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10만원권 수표를 내놓고 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마을을 세운 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성과는 있었나요.
"성공회에는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교육시설인 성베드로학교가 있는데 정신지체아들이 학교를 졸업하길 싫어해요. 졸업하고 나면 갈 곳이 마땅치 않거든요. 그래서 만든 것이 우리마을입니다. 정신지체아들이 일할 곳을 만들어주자는 것입니다. 지금 30명은 그곳에서 살면서, 20명은 출퇴근하면서 일하는 법을 배우고 있지요. 제빵에서 콩나물 상추 버섯 재배기술 등을 가르치는데 손 힘이 부족해 상추 하나 따고, 콩 하나를 고르는 데도 갖은 애를 쓰는 것을 보면 참 딱해요. 그래도 이젠 많이 익숙해져서 이들이 만든 콩나물이나 야채가 강화 지역에서 그럭저럭 팔리고 있어요. 그 수익으로 매달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씩 월급을 받을 때면 아이들이 무척 행복해 합니다. 우리마을 건립 때 저도 선산을 기증했지만, 준비 당시 손학규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이어서 20억원을 지원해줘 금방 자리를 잡았습니다. 정부 지원이 적재적소에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지요."
―모든 것이 일등주의를 지향하는 가운데 성공회대는 '더불어'를 가르치는 퍽 특이한 대학입니다.
"성공회대의 교육철학은 한 사람의 일등보다 더불어 살 줄 아는 열명의 사람을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신영복 교수가 '나무가 나무에게 말을 했답니다. 숲을 이루고 삽시다. 비바람이 불어도 숲은 끄떡없이 버팁니다. 서로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지요. 일등 못 하면 어떱니까, 꼴찌가 있어야 일등도 있는 거지요. 자기 자질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되 악의적인 경쟁은 안 시켜야 합니다. 성공회대를 움직이는 것은 신영복씨 같은 여러 훌륭한 교수분들인데 사실 그런 분을 영입한 것은 제가 아니라 이재정 전 총장이십니다."
―성공회는 교세 확장은 안 하십니까.
"성공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1890년인데 그 때부터 교세 확장보다는 분수에 맞게 사업을 해 왔어요. 한 때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박사가 현재 성공회대가 위치한 일대 땅 3만평을 헐값에 사라고 권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김요한 주교는 그 중 1만평만 사들이고 강원도에 가서 최초로 광부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펼쳤지요. 그 때 나머지 땅도 사들였다면 지금 우리가 고생도 안 하고 학교 운영도 잘 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웃음) 영국 대처 수상이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내한하면 (성공회를 알리게) 미사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거절 당했습니다. 교세 확장에는 재주가 없나 봅니다.(웃음)"
―그렇게 교인이 적은데도 교회마다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센터인 '나눔의 집'이 있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대한 성공회에 150여 개의 교회가 있는데 이중 60∼70%가 '나눔의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국 선교사 가운데는 추운 겨울날 거지가 왔는데 줄 것이 없자 옷을 벗어준 이도 있었습니다. 그런 정신을 배워야지요."
―베풀기만 하면 받는 사람은 나약해지는 것 아닙니까.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만한 사랑을 베풀게 되어있습니다. 경기 마석에 성생원이라는 음성나환자공동체가 있습니다. 40년 전 성공회가 몇 만평의 땅을 한센병 환자들에게 1,000∼2,000평씩 무료로 나눠줬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말입니다. 이들이 이제는 살만해지니까 10년 전부터 다시 자신의 땅을 교회에 내놓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교회가 이곳에 가구공장을 만들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또 여기서 나온 수입 중 400만원은 매년 장학금으로 학교에도 보내오고 있습니다. 성생원에는 외국인 노동상담소도 생겼습니다. 한센병 환자도 남을 도울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군요.
"욕심 없이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어렸을 적 10년 동안 폐병을 앓으면서 고생을 했는데, 이 시기에 많이 외롭고 힘들었지만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욕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것을 깨달았어요. 총장이 되어서도 이뤄지지도 못할 공약을 내세우기보다 학생들, 직원들, 교수들과 가깝게 지내며 가슴 속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저희 학교 와보고서 학생들이 참 인사를 잘한다고 놀라워하십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끼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이번 대통령은 '듣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라는 것이 다 고집에서 나오고 고집이라는 것이 다 주위 얘기를 안 들으니 생기는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면 고집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한밤 중에 독거 노인을 찾아가 손 한번 덥석 잡아주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의례나 형식을 따지기보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한국일보 독자들을 위해 마음에 늘 담아두시는 성경구절이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시편 97장 11절에 나오는 것인데, '바르게 살면 그 앞이 환히 트인다. 마음이 정직하면 즐거움이 돌아온다'는 구절을 가장 좋아 합니다."
/정리=김영화기자 yaaho@hk.co.kr
약력
▲ 1930년 경기 강화 출생
▲ 57년 단국대 정치학과 졸업
▲ 61년 연세대 신학과 수료
▲ 64년 성공회 성 미가엘 신학원 졸업, 사제서품
▲ 73∼84년 성베드로 학교 교장
▲ 78∼8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 84∼95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
▲ 93∼95년 대한성공회 초대 관구장
▲ 95년∼현재 성베드로 학교 명예교장
▲ 98년∼2000년 사회복지재단 우리마을 원장
▲ 2000년∼현재 성공회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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