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689)市廛商人 시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689)市廛商人 시위

입력
2003.01.06 00:00
0 0

1890년 1월6일 서울의 시전상인 수백 명이 중국과 일본 두 나라 상인을 서울 바깥으로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며 외아문(外衙門: 지금의 외교통상부) 앞에서 연좌 시위에 들어갔다. 사흘 뒤인 1월9일에는 다른 상인들도 여기 호응해 상점을 모두 철시하고 시전상인들의 시위에 합세했다. 시위가 도성의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번질 기미를 보이자, 정부는 외국 상인들을 서울에서 철수시키는 조처를 검토해 보겠다며 상인들을 설득해 이 시위와 철시는 일주일 만에 끝났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정부의 기세가 등등해 후속 조처는 내려지지 않았다.일주일간 서울을 발칵 뒤집어놓은 상인들의 철시 투쟁이 일어난 것은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뒤에 한국이 중국·일본과 맺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과 조·일수호조규 속약(朝日修好條規續約)으로 서울이 두 나라 상인들에게 개방되면서, 그 전까지 왕실과 관아를 배경으로 서울의 상권을 과점해 오던 시전상인들의 이익이 크게 위협받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 일반 상인들과 도성민들의 합류는 시전상인들의 연좌시위가 반외세 운동의 맥락 안에 놓여있었음을 보여준다. 1890년 당시 서울에는 중국 상인과 일본 상인이 각각 600명 가량 진출해 있었다.

조선 후기 한양의 시전상인은 왕실과 관아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고 여기에 대한 반대급부로 물품의 고유 전매권을 소유했다. 이 고유전매권은 금난전권(禁亂廛權)의 형태로 실현되었다. 금난전권이란 시전상인이 파는 물품을 난전 또는 사상(私商)이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권리를 말한다. 상품 경제가 발달하고 상업자본이 성장하게 되면서 육의전(六矣廛: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받고 국가 수요품을 조달한 여섯 종류의 큰 상점)을 제외한 일반 시전의 금난전권은 18세기 말에 폐지됐다.

고 종 석/편집위원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