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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트로이, 잊혀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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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트로이, 잊혀진 신화

입력
2003.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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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우드 지음·남경태 옮김 중앙 M&B·2만3,000원"언젠가는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중 트로이의 총사령관 헥토르가 한 말. BC 146년 로마의 장군 소(小)스키피오는 불타는 카르타고 시가지를 바라보며 역사가 폴리비오스에게 이 말을 건넸다고 한다. BC 900년 경에 쓰여진 이 오랜 서사시는 로마인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모양이다. 카이사르도 트로이 함락 때 탈출한 왕자 아이네아스의 직계후손이라고 자칭하며 트로이로 추정되는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이네아스가 지중해 방랑 중에 만난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영국 작곡가 퍼셀(1659∼1695)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지금도 통용되는 트로이 목마와 아킬레스 건 같은 표현 등 트로이 신화는 후세사람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BC 1200년경 절세미인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유혹해가자 격분한 그리스인들은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배 1,000척을 끌고 10년 동안 트로이 원정에 나선다. 양 진영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활약과 그리스 신화의 여러 신들이 운명을 희롱하는 가운데 그리스는 트로이를 정복한다. 수 천년 동안 전설로만 내려온 트로이 이야기는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1822∼1890)의 1870년 발굴로 역사가 되었다.

'트로이, 잊혀진 신화(In search of the Trojan war)'는 영국 BBC의 고대 문명 다큐멘터리 시리즈 제작·진행으로 유명한 마이클 우드가 방송내용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1985년에 초판이 나왔고 2001년에 새로이 발견된 사실을 첨가해 두 번째 개정판이 나왔다.

저자는 슐리만이 발굴한 곳은 '일리아스'에 실린 트로이가 아닌 다른 시대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로이 유적이 묻혀있는 터키의 히사를리크 언덕에는 선사시대부터 로마제국 말기까지 적어도 9개 도시가 전쟁이나 지진으로 명멸했다. 이 가운데 여섯번째 도시가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전쟁으로 파괴된 흔적과 당시 도자기로 추정한 연대가 트로이 전쟁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슐리만은 아파트 15층 높이의 표적층에서 겨우 한 두 층을 발굴했는데 진짜 트로이 유적은 오히려 발굴의 걸림돌이라고 판단해 파괴해버렸다고 한다.

치밀하기로 정평이 난 BBC의 다큐멘터리답게 고대사를 추적하는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 문헌 분석은 기본. '일리아스' 자체가 트로이 전쟁시대로부터 수 백년 후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히타이트 외무성의 점토판 기록과 이집트 람세스 2세의 기록 등 몇 안되는 청동기 시대의 문헌을 비교분석했다. 이 결과 저자가 찾은 내용은 당시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은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자주 해외원정을 갔다는 것. 트로이도 원정과정 중 그리스 군이 고생한 요새도시였다.

트로이를 공격한 이유도 여자문제가 아닌 고대 그리스가 노예획득을 통해 번영을 누리던 사회였기 때문. 10년 내내 전쟁하지도 않았다. 잘못 상륙해 엉뚱한 곳을 약탈하다가 다른 도시도 공략하면서 원정군의 실제 트로이 공략기간은 길어야 2년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원정 직후 미케네 문명의 몰락은 흔히 현대 그리스인의 조상인 도리아인의 남하 때문이라고 풀이되지만 지진 등 자연재해로 도시의 지도층이 몰락하면서 자연스럽게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저자는 본다. 추리소설처럼 신화에서 고대사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아직 고고학에는 '인디애나 존스'가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 트로이처럼 구약성서의 에덴동산이나 노아의 방주, 단군 신화도 실체가 드러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신화의 틀을 벗은 역사는 당시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해 줄 것이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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