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왔다. 맞이하는 세월에 더욱 설레임과 불안이 섞이는 까닭은 우리가 새 대통령을 뽑아놓았기 때문이다. 선거혁명에 성공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기원을 이룩했음에 감사하면서, 그 기적이 당 안의 정치혁명으로 이어지고 국가 통치에서도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지난 선거는 국민들에게 멋들어진 한판 축제였다. 반전에 또 반전을 거듭했던 승부는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어떤 게임보다 더 흥미로웠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잔칫상을 물리기 전부터 산적한 현안들이 승자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다. 선거에 승리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오늘 그가 거머쥔 영광은 임기를 다 마친 5년 후에야 그 진정성이 판가름 날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선거 때 내세웠던 공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자칫 공약은 국민과의 거역할 수 없는 약속으로 인식되어 당선자에게 벗기 어려운 족쇄가 될 수 있으나, 그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의 뜻도 헤아려야 한다. 따라서 공약 시행에 앞서 새롭게 의견을 수렴하여 국민적 합의를 받은 후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국민도 집권만 하면 요술방망이 든 마술사처럼 무엇이든지 다 들어 줄 것처럼 경쟁적으로 남발했던 공약이 후보들의 희망사항이지 실천사항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둘째로 과욕은 금물이다. 긴 군사통치 끝에 국민의 여망을 안고 등극했던 두 민선 대통령이 실패했던 정책들을 참고해도 금방 알 수 있다. 금융실명제나 의약분업 등은 취지는 좋았어도 운영이 미숙해서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불이익만 초래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우면 실패할 수밖에 없고 혼란만 불러온다. 대통령이 지나치게 국민의 칭찬을 의식하거나 자신의 업적쌓기에 욕심을 부린다면 주변에서 무리수를 두게 될 것이다. 노 당선자는 인기 있는 대통령보다는 실패 없는 대통령으로 평가되기 바란다.
셋째로 고르고 바른 인재 기용이다. 인사문제는 새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내놓는 첫 답안지이다. 전직 두 대통령이 바로 그 시점에서 국민의 신망을 잃었다. 국민화합이라는 가장 큰 숙제를 짊어진 새 정부의 인사행정이 불편부당해야만 국민이 이를 수긍하고 따를 것이다. 젊고 신선해서 젊은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노 당선자는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굴하지 않는 추진력은 국정 운영의 큰 힘이지만, 섣부른 자신감은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범할 수도 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당에서도 경력 있는 인사를 영입하고 그의 선거전에 큰 보탬이 되었던 인터넷을 통해 새 인물 찾기를 시도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노 당선자는 가신이 없어 비교적 자유롭다고는 하나 벌써부터 성급한 언론들이 당선자의 주변 인물을 놓고 논공행상을 하고, 당선자의 학교 동문들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으니 보기에 민망할 뿐이다.
덧붙여 이 정부는 법과 원칙을 국민 앞에 확고하게 세워주기 바란다. 대통령이 툭하면 선심성 사면을 남발해서 법의 존엄성을 무너뜨려 사회기강을 문란케 하는 일도 없어야겠고, 소위 실세라는 사람 몇이 대통령 측근에 포진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일도 없어야겠다.
당선 확정 직후, TV에서 본 당선자의 웃음이 인상 깊었다. 승리의 환희가 그대로 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던 그의 미소는 천만가지 언어를 능가했다. 웃음 안에 녹아든 그의 감동은 보는 사람 마음 깊숙이 전이되었다. 한 점 꾸밈없이 소담하고 소박하고 소탈하던 그의 웃음을 보이는 그대로 믿고 싶다. 부디 그가 그 날의 초심을 잃지 말고 그 미소가 5년 후 퇴임 시로 이어지기 바란다. 올 한해가 바뀔 때는 그래도 우리가 대통령을 잘 선택한 것 같다는 조심스런 낙관론이 고개 들길 기원한다.
박 명 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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