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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을 앗아가는… " 살아남은 자의 反戰외침 / 베트남작가 반레 장편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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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을 앗아가는… " 살아남은 자의 反戰외침 / 베트남작가 반레 장편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입력
2003.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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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은 이미 전쟁터에서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깨달은 청년은 남은 삶을 전쟁을 고발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했다. 시인으로 등단해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주제는 오로지 '전쟁'이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전장에서 죽은 친구 '반레'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베트남 작가 반레(본명 레지투이·54)의 장편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실천문학사 발행)은 작가의 체험을 헤아릴 때 의미가 더해지는 소설이다. 마침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한·미관계를 새롭게 짚으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때다.

'그대…'는 작가의 실전(實戰)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미국의 시선이 아닌 베트남 군인의 입으로 전달되는 전쟁의 실상은 지금껏 알아온 것과 같지 않다.

전사한 응웬꾸앙빈이 황천으로 가는 나루터에 도착했다. 노잣돈이 없어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인간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두 기억해내면 환생할 수 있다"고 나루꾼 노인이 말해준다.

그때부터 한 순간도 자비롭지 않았던 전쟁 이야기가 이승과 저승의 문턱을 오가면서 펼쳐진다.

그때 베트남에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손자를 전쟁터로 보내야 하는 할아버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죽여버리는 남자, 남은 음식을 모아 민가에 갖다 주려는 군인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상사가 있었다.

포화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잃고 황폐해진다. 전쟁은 어느 쪽에서 총을 겨누어도 정당화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

전쟁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질문을 두고 반레는 소설 속에서 답한다. 그것은 조국을 친 '적'이 내세운 명분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고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큰 나라들은 언제나 국제사회의 헌병을 자처하고 나서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에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그들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을 끌어들여 서로를 파멸시키는 일에 몸을 던지도록 만들고 있어. 그게 바로 전쟁이야. 그것은 도살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사기꾼을 위대한 인물로, 지식인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네."

작가는 "가난하고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문학은 작가가 살아가는 역사와 그 구체적인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그는 믿는다. 그것은 당연히 살아남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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