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03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최길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03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 - 최길하

입력
2003.01.04 00:00
0 0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나라, 달밤에 바람이 모래언덕을 한 겹 한 겹 벗기면 비단이 풀리는 것 같고, 아름다운 여인의 능선이 드러나는 나라, 천일 밤을 이야기해도 끝이 나지 않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나라, 의자만 옮기면 하루에도 몇 번씩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어린 왕자'가 사는 나라, 그 나라엔 지금도 모래를 구워서 푸른 별빛의 유리잔을 뽑아내고 한 뼘 만한 피리로 무서운 독사도 일어나 춤을 추게 하는 사람들이 살지요.얼마나 아름답고 맑은 영혼을 가졌기에 독사도 일어나 춤을 추게 할까요? 흉하고 무서운 독사도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맑은 영혼의 빈터가 있다는 걸까요?

저도 맑은 영혼을 길러 독사도 일어나 춤을 추게 하고 싶습니다. 모래나라 사람들의 맑은 영혼을 시 한 편과 바꿀 수 있도록 투명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시를, 자연에서 내 영혼의 뜰채로 건져 올리렵니다.

지난 가을 문을 새로 바르며 손이 많이 닿는 문고리 밑에다 논두렁에 콩 심듯 봉선화 꽃씨 세 알을 넣고 손바닥만큼 종이를 덧발랐습니다. 환히 비치는 씨앗, 우리 어머니 젊었을 때 젖꼭지가 저랬을까,

아침저녁으로 물을 품어주고 해와 달과 별과 눈맞춤하다 보면 저기서도 연초록 싹이 틀지? 싹이 터 꽃이 피고 그 꽃물 손톱 끝에 받아서 열 손가락에 다 받아서 편지 읽듯 좍 펴보면 시간마다 찍힌 개기월식, 그 위로 기러기 그림자가 두어 번 지나가고 흰 구름도 흘러가고 그렇게 세월도 참 쉽게 지나가는 것으로 어디 눈이나 씻어볼까….

하늘에 별처럼 어젯밤 꿈처럼 베짱이나 여치의 갓 맑은 정강이 같은 그런 시를 건져내겠습니다. 그것으로 한국일보와 심사위원께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